[대구 '부도심 시대'] (하)이렇게 준비하자

입력 2006-12-08 09:53:40

아파트와 상권 일변도의 팽창 속에서 '업무, 교통 기능 분담'이라는 부도심의 본래 기능을 키우는 일이 대구 4대 부도심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미 택지개발이 모두 끝난 4대 부도심에 뒤늦게 업무 시설 등을 채워넣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 한계 상황에 부딪힌 대구 부도심,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계획의 힘

대구 부도심은 개발의 논리가 지배했던 1980, 90년대 탄생했다.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라 일단 아파트를 짓는데 초점을 뒀던 대구 부도심은 상가와 업무 시설의 균형을 맞추는데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개발은 하되 계획적으로 개발하자'는 국가적 움직임이 지난 2000년쯤 태동했다. 녹지, 주거, 준주거, 상업 등 단순한 지역 설정을 넘어 모든 건물의 용도, 높이, 밀도를 결정하는 도시계획법상 지구단위계획 개념이 등장한 것.

'계획의 힘'은 엄청나다. 발표 1주년을 맞은 대구 안심부도심내 혁신도시의 개발 과정이 그렇다. 이달 중순 최종 확정되는 대구혁신도시 기본구상 용역은 지역 여건 및 현황 분석→수요 분석 및 개발 규모→혁신클러스터 구축 방안→기본 구상 절차를 지난 5월부터 벌여 왔다. 실제 기본구상은 광역 공간 구성을 바탕으로 혁신도시내 건물배치, 보행동선, 입지선정, 지구별 토지이용계획 등으로 이뤄졌다. 이렇게 구상한 혁신도시는 택지개발지구같은 단순한 주거, 준주거, 상업 지역 구분과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먼저 주거 지역. 주변 환경에 따라 단독, 블럭형, 공동 주택으로 나뉘고 공통주택은 다시 저밀, 중밀, 고밀 개발로 구분된다. 다음은 상업지역. 근린생활, 상업, 복합, 업무연구, 문화, 종합의료, 생활체육, 사회복지 시설 등으로 세분화해 상가 난립을 막는 동시에 주민 삶의 질을 높인다. 숙박지구와 전시, 세미나, 비지니스 호텔 등으로 구성된 지원시설지구도 따로 정해 뒀다. 공공시설도 빼놓을 수 없다. 주민 편의를 위해 도로, 주차장, 도서관 시설 등을 설정했다. 마지막은 공원·녹지·공간과 공간 사이에 공원을 확보하고 녹지는 보존 필요성에 따라 절대보존, 최대한 보존으로 단계를 정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혁신도시엔 유보지라는 개념이 추가됐다. 아무리 세세하게 개발 구역을 정해도 나중에 모자라는 부분이 있다면 그때 다시 채워 넣겠다는 의미다.

◆계획 없는 대구 부도심

혁신도시와 달리 이제껏 대구 부도심에는 단 한번도 '계획다운 계획'이 없었다. 한국도시설계학회에 따르면 지금까지 127곳에 이르는 대구시 지구단위계획 지역 중에서 주택재건축(24곳), 택지개발(27곳), 주택건설(63곳)이 전체의 9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 한국토지공사나 개별 아파트업자가 개별 지구단위계획을 세우면 시가 검토과정을 거쳐 사업을 승인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시 및 구청의 도시 계획 담당들은 "개발의 논리가 지배했던 택지개발 시대에서는 개발 뒤 뒤늦게 계획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했다."며 "개발 이후 지역 발전 여부는 시장 원리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택지개발계획에 따라 이미 개발이 끝난 대구 부도심은 이제 '계획'의 기회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다시 지구단위계획을 세워본들 아무 의미가 없어진 것. 도시계획법엔 택지개발지구라 하더라도 10년이 지나면 의무적으로 지구단위계획을 다시 세우도록 하고 있지만 대구 부도심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노변, 지산·범물 지구에 대해 관련 절차를 밟고 있는 수성구청 한 관계자는 "바꿀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며 "단순 정리 차원의 계획만 가능했다."고 말했다.

고산권에 대한 수성구 장기 발전계획에는 부도심 기능을 위해 쇼핑몰과 컨벤션센터를, 산업 및 연구 기능을 위해 ▶기업 인큐베이터 ▶아파트형 공장 ▶직업훈련원을, 레포츠 휴양기능을 위해 대구종합경기장과 대구대공원을, 유통기능을 위해 농산물 집배송센터를 만들기로 구상돼 있지만 월드컵경기장을 제외한 모든 인프라가 아직도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전망도 어두운 실정이다.

'무계획'의 가장 큰 '피해자'는 범어네거리. 구청 공무원들은 "대구시가 지난 2003년 종세분화를 통해 범어네거리권 주거지역의 개발 밀도를 높여주면서도 아무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며 "여기에다 아파트 붐으로 인해 범어네거리 상업지역에 주거 밀도를 극대화한 주상복합이 잇따르기 시작, 국제비지니스, 광역교통 중심을 표방하는 동대구 신도심 정책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제 계획을 세우자

그렇다면 부도심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전문가들과 도시계획 행정 공무원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는 가장 현실적인 대책은 역세권 지구단위계획이다. 택지개발지구는 더 이상 개발이 불가능하지만 지하철 1, 2호선과 앞으로 건설될 3호선을 따라 택지지구 바깥에 형성된 역세권은 체계적 개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부도심이나 도심과 붙어 있는 역세권을 상업, 업무, 교통 기능이 적절하게 조화된 지역으로 개발해 상호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자는 전략이다. 지난달 6천만 원을 들여 대구 최초로 부도심 활성화를 위한 역세권 개발 용역을 의뢰한 대구 달서구청의 손경수 팀장은 "말이 역세권이지 바로 뒤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4m, 6m 도로이다"라며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건축 한계선을 정하고 골목 도로를 넓혀 주면 교통 효과가 더 살아나 상권과 업무 기능도 덩달아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광석 대구시 도시계획 담당은 "역세권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역별 특성화 전략을 세워야한다는 데 공감한다."며 "1 대 9의 상업, 주택 비율을 규정한 도시계획조례를 2 대 8 이상 조정해 주상복합의 업무 기능을 높이는 방안도 조만간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대구 도시계획조례 개정을 통해 업무시설을 많이 들이면 들일수록 개발 밀도를 더 높여주는 방안도 거론하고 있다. 지정, 권장 용도를 설정하고 기준, 허용, 상한 등 단계별 용적률을 재설정해 지정, 권장 용도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밀도를 주는 방식. 일찍부터 난개발을 경험한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도시계획이다.

이와 관련 홍경구 대구대 교수(도시계획전공)도 "세계의 도시계획 흐름이 교통 중심으로 나아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역세권 지구단위계획을 통한 체계적 도시개발이 가장 설득력 있다."며 "부도심과 붙어있는 거점 역세권을 선정해 폭넓은 도시계획 기법을 활용한다면 부도심과 역세권 개발의 윈-윈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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