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초등학교 교사로부터 푸념섞인 하소연을 들었다. 글쓰기 숙제를 시켰더니 '대략'이나 '쵝오', '허접'이라는 단어가 많더라는 것이다. 중·고교생이나 쓰는 줄 알았던 인터넷 은어들을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자유자재(?)로 쓰는 세태가 걱정된다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교실에서 아이들의 대화를 듣다보면 30대 초반의 자신도 모르는 외계어가 난무한다는 것이다.
최근 기성세대들에게 친숙한 단어를 던져놓은 뒤 10대들이 미뤄 짐작한 답을 놓고 정답(제시어)을 맞추는 한 방송 연예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때로는 고어에 가까운 단어들도 등장하곤 하지만 대부분 실생활에 등장하는 말들인데 10대들은 정말 엉뚱한 답을 하기 일쑤다. '정말 저런 말도 모르나' 싶을 정도다. 초등학교 다니는 조카에게 슬며시 물어보니 '덕택'이라든가, '태무심하다'는 말 뜻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말이란 것이 계속 써야만 생명력을 유지하는 법이다. 말은 그 자체로 대화의 수단인 동시에 우리 조상들의 정서를 그대로 담는 그릇이기에 잊혀지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서점에서 '우리가 짜장 알아야 할 고운말 100가지'(이이정 글/청솔 펴냄)를 집어 들고 책장을 넘겨봤다. '갈무리' '곰살궂다' '괴발개발' 등 눈에 익은 말도 있는 반면에 '부엉이셈', '수제비태껸', '애면글면' 등 모르는 단어도 태반이었다.
다시 찬찬히 한 단어 한 단어 그 뜻과 사연을 되새겨보니 한 단어가 탄생하기까지 조상들의 해학과 정서가 정겹다. '수제비태껸이 버릇없이 어른들의 말에 끼어드는 모습'이라는 말에서 수제비태껸을 보자. 수제비를 뜨는데 우리 전통 무예 태껸하듯 갑자기 휙휙 뜬다는 말이다. 조상들의 재미있는 비유가 웃음을 자아낸다. 책 제목에 나오는 '짜장'이란 말도 '과연', '정말로'라는 뜻을 가진 고운 우리말이다. '웃기는 짜장이야'라는 속어도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짜장 웃긴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단어를 설명한 후 활용을 더한 우리말 이야기와 교훈적인 이야기를 싣고 있는 점도 세대간 말의 격차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될 성 싶었다.
물론 책에 나오는 100가지 단어를 모른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그 중 상당수는 책에서나 등장할 뿐 실생활에서는 별반 쓰이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비기다', '오롯이' 등 아름다운 울림이 실린 우리말을 놓고 '내가 어렸을때는 말이야...'하면서 자녀와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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