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비정규직법 통과에 '엇갈린 반응'

입력 2006-12-04 09:08:16

대구지역 중견기업에 다니는 권모(38·여) 씨는 지난 달 30일 비정규직법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계약직으로 일한 지 벌써 5년째.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으로 법이 바뀌었지만 권 씨는 불안하다. 과연 회사에서 자신을 정규직으로 받아줄 것인지 의문스럽기 때문. 출산과 정리해고 등으로 두 번의 퇴직과 입사를 반복하면서도 맡은 업무의 특성상 매년 재계약을 해왔다는 그녀는 "법 시행이 내년 7월부터인 만큼 올해 재계약은 어떻게든 되겠지만 그 다음이 문제"라며 "비록 수당이나 상여금이 없는 등 근로조건이나 복지 수준은 낮지만 그래도 잘리는 것보다는 나은 것 아니냐."고 한숨을 쉬었다.

비정규직의 남용과 차별을 막겠다는 비정규직법. 그러나 대다수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하다. 기간제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타고 올라가는 길이 트인 셈이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근로조건과 복지 등의 차별은 둘째 치고라도 당장 고용불안이 가속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것. 비정규직들은 정규직 전환에 부담을 느낀 기업이 계약 기간을 조정, 2년 안에 비정규직들과의 계약을 해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사립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는 A씨(29). 올해로 3년째 국어를 가르친다는 그는 하루종일 학교가 술렁였다고 했다. 기간제 교사의 수가 학교 전체 교사의 절반에 육박하는데 2년 뒤 정규직으로 채용되지 못하면 학교를 나가거나 계속 떠돌아다녀야 하기 때문. A씨는 "여차하면 평생 정규직은 꿈도 못 꾼 채 기간제 교사로만 살까봐 두렵다."며 "비정규직의 남용을 막는다는 법이 오히려 청년들을 실업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고 있다."고 했다.

경북 경산 진량공단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는 정모(30) 씨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정 씨는 "대기업이나 관공서도 아니고 중소업체에서 해고의 부담이 큰 정규직을 떠안을 리 만무하다."며 "결국 2년간 시한부 직장인으로 살아야 하는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용역(도급) 근로자와 골프장 도우미(캐디), 학습지 교사 등 특수 근로자들의 불만도 폭발 직전이다. 새 법이 시행돼도 이들은 원칙적으로 정규직이 될 여지가 원천봉쇄됐기 때문이다. 이번에 통과된 비정규직법엔 정규직화에서 용역근로자와 특수근로자를 제외한 것. 결국 비정규직 내에서도 다시 차별이 생겨나는 셈이다. 영남대에서 시설 관리 용역 근로자로 일하고 있는 전영경(72) 씨는 "'개선'이든 '개악'이든 간에 비정규직이라면 모두 평등하게 권리가 보장돼야 하는 것 아니냐."며 "시설 근로자는 50~60대가 대부분이어서 재취업이 어려운데다 '계약해지'를 내세운 회사 앞에서 영원히 약자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면 중앙행정기관이나 지자체, 공기업 등 고용불안이 덜 한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재계약이 가능한데다 2년 뒤 정규직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큰 덕분이다. 대구시내 한 구청에서 7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김모(26·여) 씨는 "재계약은 거의 따놓은 당상이어서 앞으로 2, 3년만 잘 버티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며 "이제는 임금 수준이 얼마나 개선될 지가 관심사"라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