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마시고 싶다" 비주류파의 애환

입력 2006-12-02 15:52:51

일 년 동안 마시는 술의 절반을 마신다는 12월. 송년회 등 술로 흥청대는 모임을 손꼽아 기다리는 주당(酒黨)들이 있는 반면 연말이면 몸이 한없이 움츠러드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술 못 마시는 사람들. 이들에게 각종 술자리가 집중되는 연말은 '죄인 아닌 죄인'이 돼야 하는 시기다.

▲"술, 온몸이 아파요."

연극인 이동수(39) 씨는 대구 연극계에서 술을 안 마시는 거의 유일한 존재다. 특히나 술이 난무하는 연극계에서 그가 술을 입에 대지 못한다는 것을 널리(?) 각인시키는 데엔 꼬박 10년이 걸렸다. "술 때문에 하도 괴로워 5년 전 병원에 갔더니 술을 분해하는 능력이 전혀 없다고 하더군요." 이 씨는 소주 한두 잔만 마셔도 금방 취하고 잠이 든다. 온몸이 빨개지고, 머리도 아프다는 것.

직장인 이상민(30) 씨 역시 술을 못하는 체질을 타고났다. 집안 제사에 참석하는 사람이 20명 정도 되는데 법주 1병을 못 비운다고. "소주 2잔까지는 참겠는데 3잔을 마시면 속이 울렁거리면서 끝내 토하게 되지요."

인터넷에 오른 어느 술 못 마시는 사람의 고백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소주 한 잔만 마셔도 뻗습니다…. 간혹 뉴스에서 보면 술 먹다가 죽는 사람도 있던데. 저 같은 경우가 술을 많이 먹으면 그럴 것 같습니다."

▲"쪼잔하게 술도 안마시고."

술을 입에 대지 못하는 사람들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술 자체보다는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을 마치 죄인 다루듯 하는 특유의 술자리 분위기다.

"사람이 쪼잔하게 술도 안마시고." "자꾸 마시면 늘어." 너무 많이 들어 귀에 못이 박히는 말들이다. 분위기 깰까봐 마지 못해 잔을 받아들기도 하지만 소주 한 잔에 쓰린 속을 움켜쥐고 괴로운 밤을 보내기 십상이다.

연극인 이동수 씨의 경우 술을 안 마시다보니 선배들로부터 "뺀질거린다."는 힐난을 들어야 했다. 직장인 이상민 씨는 술자리에서 폭탄주를 거부했다 무릎을 꿇어라는 황당한 말도 들었다.

술자리에서 콜라잔을 내밀었다가 '짠~'도 안해주는 수모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술을 못 마시지만 콜라를 마시면서 분위기를 따라갔다 "술보다 콜라값이 비싸네."라는 힐난을 받기도 한다는 것. "어떤 사람은 술 안 먹는다고 시비 걸다 대판 싸웠죠. 그런데 싸운 후에 화해하자면서 또 술잔을 권하더군요. 왜 하필 술 공화국인 대한민국에 태어났는지 이민이라도 가야 할까 생각했어요."

▲"음주량이 능력이라고요?"

예전보다는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가 그나마 덜해졌다는 게 술을 못 마시는 사람들의 이구동성. 공무원 진수일(42) 씨는 "얼마전까지는 술을 강제로 먹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덜하다."고 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해 인간적으로 친해지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술로 인해 건강을 해칠 염려도 없는 등 장점도 있다는 게 그의 얘기다.

연극인 이동수 씨는 술 대신에 남들보다 한 걸음 더 뛰는 비결로 연극계를 누비고 있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오전 7시면 꼭 일어납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데 따른 부족함을 부지런한 것으로 메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술을 못 마시는 사람들이 오히려 술자리에 꼭 있어야 할 존재로 '각광'받기도 한다. 이상민 씨는 술자리가 끝난 후 술에 취한 참석자들을 일일이 집에까지 태워주면서 나름대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술값 바가지를 쓰지 않도록 하거나 시비가 생길 때 해결하는 게 제가 맡은 일이지요. 또 직장 상사나 동료들을 집에까지 태워주면 다음날 인사를 많이 받아요."

이들은 "음주량을 그 사람의 능력으로 규정짓는 인식부터 사라져야 한다."며 "나와 다른 것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술 문화가 하루빨리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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