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20년을 빛낸 인물들

입력 2006-11-29 12:02:31

◎김호길 초대 총장

1994년 4월의 마지막 날, 우리나라는 큰 인물 하나를 잃었다. 김호길 초대 포스텍 총장. 그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영국 버밍엄대학 유학 2년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 최단기간 학위 취득이라는 간단한 이력부터 포스텍을 만들고 성장시키기까지 마음먹은 모든 것을 최단기간에 완벽하게 일궈내는 '기적'을 창조한 인물이었다.

김 총장은 동료·제자들과 함께 교내 체육행사를 하던 도중 불의의 사고로 61년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를 아는 많은 이들은 "마지막 순간을 자신보다 더 아꼈던 포항공대와 그 곳의 제자들과 함께 했기에 그나마 아쉬움을 덜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포스텍에 기울인 열정과 애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포철 박태준 회장으로부터 전권을 넘겨받아 대학을 열고 이름조차 생소한 방사광가속기연구소를 만들어 한국 과학기술의 100년 뒤를 설계했던 김 총장. 지금 포스텍이 세계 수준의 대학으로 도약했다고 자랑하는 저변에는 그가 9년여간 총장으로 재직했던 후광 덕분이라는 말이 포스텍 내부에서 많은 것에서도 그의 역할과 영향력을 알 수 있다.

포스텍 초대 총장으로 내정된 뒤 미국과 유럽 곳곳을 뒤지며 교수 초빙에 나섰던 김 총장이 "공부하고 연구하려면 나와 함께 귀국하고 개인의 영달을 도모하겠다면 여기 남으라."고 말해 장수영(전자공학·2대 총장 역임), 고 이정묵(기계공학), 박찬모(현 총장) 교수 등 세계적 석학들을 영입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전설처럼 남아 있다. "30년 뒤에는 포스코 부설 포스텍이 아닌 포스텍 부설 포스코로 바꿔 놓겠다."던 그의 신념을 포스텍 원년 멤버들은 지금도 되새기고 있다.

◎박준원 화학과 교수

포스텍이 짧은 기간에 확고한 자리를 잡은 이유 중의 하나는 연구실 안에서 잠자기 일쑤인 연구결과물을 기술 이전과 사업화를 통해 현장에 적용, 연구성과를 실질적인 이득 창출로 연결했기 때문이다. 나노화학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화학과 박준원(49) 교수는 이런 점에서 포스텍의 상징인물로 꼽힌다.

그는 교수 외에 'NSB 포스텍 사장'이라는 직함을 하나 더 갖고 있다. 지난 6월 1일 창립한 NSB 포스텍은 '나노콘'이라고 부르는 유전자 칩(회로를 붙이는 반도체 조각) 기판구조 제작의 획기적 원천기술을 개발한 박 교수가 기판을 생산하고 기술 이전을 할 수 있도록 포스텍이 만들어준 학교기업 1호다. 의료분야 각종 진단시약의 효과 극대화 등 적용분야가 워낙 넓고, 이 회사의 기술 수준이 세계 최고여서 박 교수는 학계와 의료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회사 자체의 발전 가능성과 인류 기여도가 함께 높기 때문.

박 교수 겸 사장은 바이오 분야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고가의 제품을 무료샘플로 증정하는 등 학자 기업인다운 경영기법을 도입, 또다른 화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박동주 행정처장은 "사업화할 수 있는 기술을 매년 10개씩 발굴해 건당 5천만 원씩 지원하겠다. 이를 통해 2020년에는 대학의 로열티 수입을 100억 원으로 확대하겠다."며 박 교수를 포스텍의 선구자로 꼽았다.

◎손영준 美 애리조나대 교수

지난 2000년 6월, 미국내 상위권 대학의 공대 교수사회가 한국 출신 한 젊은 학자 때문에 술렁거렸다. 주인공은 당시 26세의 손영준 씨였다.

그는 1992년 대구고를 수석 졸업하고 4년 뒤 포스텍 산업공학과 역시 수석 졸업했다. 곧바로 미국 펜실바니아대학으로 유학해 4년만에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2000년 8월 마침내 박사학위를 받기로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학위를 받기 두 달 전, 명문 애리조나대학에서 그를 산업공학과 정규 교수로 채용을 확정했던 것. 한 한국인 젊은 청년학자로 인해 세계 선두를 자처하던 미국 학계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손 교수의 활약은 이후로도 이어졌다. 5년 뒤 미국은 물론 전세계 학계는 또 한번 손 교수에게 이목을 집중해야 했다. 미국 산업공학회(IIE)가 전세계 35세 이하 소장 학자를 대상으로 논문발표와 학계 기여도 등 연구업적을 평가해 단 1명을 시상하는 '젊은산업공학자상' 수상자 명단에 '손영준'이라는 이름이 올라 있었다. 2004년에는 미국 생산공학회로부터 '젊은 생산공학자상'을 받기도 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기업 간 통합생산 및 공급망 관리분야에서 2개의 국제저널 편집위원을 맡고 있고 저명 저널에 25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그의 활약상은 많은 학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대다수 포스텍 출신들은 그래서, 손 교수를 가장 자랑스런 동문으로 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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