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맥박기의 호흡이 끊기면 제 아들도 하늘나라로 가는 거겠죠. 산소호흡기를 유지하는 기계 소리가 지금 제겐 고마울 뿐입니다. 희미한 숨결이라도 붙어만 있길 바랄뿐입니다. 형광등 불빛에 더욱 창백한 아들 얼굴을 보며 "오늘 하루도 견뎌냈구나." 라는 생각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아봅니다.
두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출근 준비를 서두르던 학철(43)이가 화장실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졌지요. 공장에서 프레스 작업을 하는 아들은 가끔 코피를 쏟긴 했지만 피를 토하진 않았는데···.
아들이 혼수상태에 빠진 지 한달이 됐습니다. 병원에서는 십이지장의 염증이 복막염으로 해서 폐혈증이 됐다고 합니다. 염증이 폐까지 왔다는데 도통 무슨 소린지요. 칠순 노인네가 보기엔 아들의 배에 뚫어넣은 호스로 시커멓게 변해버린 피가 끊임이 없고 딱 그 양만큼 수혈을 해야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죽을 병은 아니지예?" 아무리 물어도 지켜봐야 한다는 말 뿐, 여기 있었던 환자도 같은 병으로 세상을 등졌다고 하는데.
아들은 열심히 일했습니다. 남편 소작일을 물려받았는데 제법 벌이도 솔찮았지요.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부터는 이상하게도 벌어들이는 것보다 나가는 돈이 많았습니다. 빚을 감당하지 못해 카드를 썼다는데 그 빚때문에 20평 시골집이 날아갔지요. 며늘아이를 내보낸 건 그 때입니다. 홧병이었을겁니다.
남편은 뇌출혈로 세상을 떴지요. 아들은 남편의 묘 앞에서 "어머니 잘 모시겠다."며 그렇게 울부짖었는데···.
저에게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작은 아들(30)도 있습니다. 학철이가 대리운전하면서 밤을 새고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주말에 막노동까지 나간건 다 동생 때문이었지요. 어떻게든 치료시키보려고 자기 몸도 돌보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영문인지. 작은 아들은 형이 쓰러지자 중국집 배달을 했다고 합니다. 병원비를 벌어보겠다고 했지만 월급 한푼 받지 못하고 쫓겨났지요. 따지러 갖더니 그 말이 참 기가 막히더군요. 부랑자인 줄 알았다고, 미친 사람 말을 어떻게 믿고 여기와서 행패냐고. 이제 막내에게는 바깥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세상은 약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하니까요.
한달을 혼수상태로 있었던 아들 곁에는 하나 뿐인 손자(11)가 있습니다.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넘겼는데 그 때마다 어떻게 아는지 "아빠 뺏어가지마."라며 울어댑니다. 엄마의 따뜻한 품이 몹시도 그리울텐데. 병원에서 나이가 어려서 중환자실에 들어올 수 없다고 아무리 타일러도 몇 시간이고 문밖에서 고집을 피우는 저 아이를 말릴 수 없다고 합니다. 피는 못 속이는 법이죠. 아빠마저 자기를 버리지 말아달라는 저 아이의 간절한, 실낱같은 희망을 뺏아가지 말아주세요.
21일 동산의료원 중환자실에서 만난 박정자(69) 할머니는 경주와 대구를 오가며 짬짬이 파출부 일을 하고 있었다. 한 봉지에 몇 만원씩 하는 아들의 항생제 비용을 벌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눈이 어두워 머리카락 한 올 제대로 줍지 못하는 그를 계속 불러주는 곳이 없다.
"어머니 칠순인데 효도도 못해드리고 면목이 없다."고 했던 아들은 입원 두달 만에 180cm 키에 몸무게가 45kg도 되지 않았다. 핏기 하나 없이 휑한 얼굴을 지켜보던 할머니 눈자위가 눈물로 얼룩졌다. 병실에 누워 있는 큰 아들, 정신지체 장애자인 작은 아들에다 손자까지 둔 할머니의 삶이 위태롭기 그지없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어떤 제도인지도 몰라 엊그제 신청를 했단다. 지금까지 밀린 병원비만 2천만 원이 족히 넘는다.
손자는 오늘도 중환자실 문 밖에서 "학교에서 내가 키가 제일 크니까 들어가게 해줘요."라며 떼를 쓰고 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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