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우울한 음악을 들으면 슬픔을 느낀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이런 느낌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것은 대뇌의 주름에 기록된 '기억'에서 비롯된다.
실연의 이미지와 연결된 음악을 나중에 접하게 되면 그 음악은 곧 실연의 음악으로 받아들여진다. 사랑하는 이를 만날 때 들었던 음악은 또 그렇게 설렘의 기억으로 기록된다. 기분이 아주 좋아지는 음악은 '도파민'이라는 흥분물질을 분비시키고, 기분이 아주 우울할 때의 기억과 연결된 음악은 '세로토닌'과 같은 항우울 물질의 분비를 방해해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이제는 많이 알려진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 E플랫장조 작품번호 100번 2악장. 최민식·전도연이 열연해 불륜이라는 소재를 격정적으로 잘 그려낸 영화 '해피 엔드'에 삽입됐던 곡이다. 지금도 이따금 들으면 예외 없이 최민식의 고통에 찬 표정과 불행했던 만남의 장면들이 오버랩 되는데, 감독은 이 음악이 끄집어내는 상실의 코드를 너무도 잘 이해했던 듯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직도 나를 이렇게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슈베르트의 이 곡을 작곡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아직도 영화 '해피엔드'의 그늘 아래서 듣고 있다. 냄새도 기억과 연동되기는 마찬가지다. 뜨거운 여름날 쇄석이 깔린 마당에 물을 뿌리는 순간 '훅'하고 끼쳐오는 수증기 냄새에서, 추운 겨울날 따닥따닥 타들어가는 돌솥밥 냄새에서, 오랜 세월 열어보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그림일기를 발견하고 조심스레 열어볼 때 순간 피어오르는 추억이 날아가는 듯한 아련한 곰팡내에서.... 냄새는 우리를 과거의 어느 때로 '순간 이동'시킨다.
'해피 엔드'의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를 들으면 지금의 나는 죽음과 인간적 고통을 연상하지만, 이 곡을 그 이전 햇빛이 찬란한 장미원에서 들었더라면 그런 죽음의 기억 대신 햇빛과 장미향의 묘한 콘트라스트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나 방송을 만드는 이들이 음악을 택할 때, 드라마구조 속에서 그 상징을 선택하기 위해서 신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음악이 오랫동안 그 사람의 기억을 지배할 것이므로.... 방송 PD의 고민도 그렇다. 나는 오늘도 음반 더미에서 고민하고 있다.
남우선(대구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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