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1천리를 가다] 경주 양남 읍천리

입력 2006-11-11 15:59:51

경주 양북면 봉길리 문무대왕릉에서 해안선을 따라 난 31호선 국도를 달리는 즐거움은 도로 옆으로 난 동해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즐거움도 월성원전 입구에서는 잠시 사라진다. 중요시설인 만큼 보안 등을 이유로 해안선을 따라 났던 국도가 산쪽으로 우회하기 때문. 고불고불 고갯길을 넘으면 양남면 나아리∼읍천리∼수렴리∼울산광역시로 연결된다.

양남면에는 월성 1, 2, 3, 4호기가 들어서 가동 중이고 올해부터 신월성 1, 2호기가 건설 중이다. 양북은 물론 양남면 주민들은 이래저래 월성원전과는 인연을 맺고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월성원전과 읍천리=1975년 6월 월성원전 1호기 기공식을 갖고 건설 공사가 본격 시작되면서 양남면 읍천리 일대에 들어선 월성원전 직원 사택 자리는 1970년대 중반 코오롱의 전신인 한국나이롱 소유였다. 이 회사는 이 일대에 골프장 등 리조트 시설을 건설하려던 계획을 세우고 있다가 국가 에너지 정책에 따라 월성원전이 건설됨에 따라 그 자리를 물려줬다. 이 회사는 양남 신대리에 대규모 리조트를 건설해 운영 중이다.

월성원전이 생기면서 인근 마을들도 자연스럽게 제법 규모를 갖춘 동네로 변모했다. 여느 시골마을엔 없는 유흥주점과 병원, PC방, 당구장 등 다양한 업종의 가게들이 영업을 하는 등 활기를 띠고 있다. 이제 양남에서는 가장 큰 동네인 '원전마을'이 됐다.

월성원전 1호기 건설 당시부터 근무했던 윤재황(52) 방재환경부장은 "1호기 건설 당시만 해도 캐나다원자력공사와 영국의 GEC회사가 원전을 다 지어 우리 한전에 인계해 주는 턴키방식이어서 외국인 기술자들이 많이 들어와 사택에서 생활했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외국인들을 쉽게 접할 수 없는 시절이라 한전 직원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들도 이들의 생활에 궁금증을 보이며 신기해했다고 한다.

읍천리 월성원전 사택촌은 원전 호기가 늘어날 때마다 직원 사택이 늘어나 현재는 9만여 평에 당시 외국인 기술자들이 사용했던 단층 단독주택과 26개 동의 아파트 등에 모두 900여 가구가 입주해 있다. 이곳에는 유치원과 테니스장, 운동장, 헬스장, 골프연습장 등의 시설이 갖춰져 한수원 직원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도 이용하고 있다.

주민들이 원전 직원들과 많이 가까워졌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나 '위화감' 등은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한 30대 주민은 "생일잔치를 하더라도 동네아이, 사택아이 구분할 정도다. 알게 모르게 끼리끼리 모여 노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원전 사택에 살고 있는 50대 부인은 "주민이나 한수원 직원이나 서로 가까이 다가서려고 노력해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으나 아직은 양측 모두 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양남면사무소에서 15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손경선(46) 재무사회담당은 "행정기관에서 양측을 아울러 보려고 체육대회 등을 개최하는 등 노력한 결과 많이 좋아졌으나 생활수준과 의식의 차이 등으로 어딘가 거리감이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방폐장 사업과 원전 추가 건설 등에 뒤따르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이는 포기할 수 없는 과제라는 인상을 받았다.

◆기로에 선 읍천항=읍천은 동해안의 양남면에서는 가장 큰 포구였다. 마을 어른들은 마을 가운데를 가로질러 바다로 흘러가는 내가 있어 읍천(邑川) 읍천포(邑川浦)라 불린다고 했다.

하복수(75) 씨는 "일제시대부터 읍천에서는 대형 어선들이 많은 감포와는 달리 규모가 작은 목선 따위를 타고 오징어 멸치 같은 고기들을 많이 잡았지.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곳에서는 상어고기인 돔배기가 많이 잡혔지. 한동안 자취를 감췄는데 요새 들어 상어가 간혹 그물에 잡히고 돌고래도 동해안에 나타나."라고 했다.

이곳 어민들은 월성원전 2, 3, 4호기가 잇따라 들어서면서 온배수의 영향으로 바닷물 온도가 조금씩 상승하고, 생활하수 등의 유입으로 오염이 날로 심해지면서 어업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다.

읍천 어촌계장을 역임한 주진만(52) 씨는 "온배수의 영향 등을 이유로 한 어업권 보상문제 용역과 감정이 끝나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결말은 나겠지만 어업권 보상 문제는 또 다른 쟁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어업권 보상이 이뤄지면 읍천항을 비롯한 이 일대 어업에도 많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배를 타는 사람들은 영향이 덜하겠지만 미역, 전복 등 연안 양식에는 상당한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곳 어민들은 1971년 제1종 어항으로 지정되었지만 규모가 작아 개발이 부진했던 읍천항을 앞으로 도시민과 어민이 공존하는 쾌적한 관광어항으로 개발하려는 계획이 어떤 성과를 거둘 것인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경주·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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