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사람] 판화가 이철수씨

입력 2006-11-10 07:52:38

간결하고 단아한 그림, 촌철살인의 화제 혹은 시정이 넘치는 짧은 글…. '판화로 시를 쓴다.'는 평을 듣고 있는 우리 시대 대표적 판화가 이철수(52) 씨가 6년 만에 대구를 찾았다. 그가 대구 수성구 시지 지역에 새로 공간을 튼 주노아트 갤러리(053-794-3217) 개관 초대전으로 64개의 정방형 판화로 제작된 8폭 병풍 등을 선보이고 있다.

이미 지난달 25일부터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전시장은 아파트 상가 지하 옛 찜질방을 개조한 것이다. 만촌동에서 외국학술전문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허두환(46) 씨가 대구에 미술인들이 많아도 전문서점이 없는 것을 아쉬워하며 예술전문서점과 함께 차린 공간이다.

지난 1일 개관식을 위해 방문한 이 씨를 전시장에서 만났을 때 그는 곱슬머리에 둥근 테 안경을 끼고 베이지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겉모습에서도 작품의 이미지가 느껴졌다. "5년에 한 번씩은 지역에서 전시회를 해왔어요. 그런데 작년에는 서울과 미국 시애틀에서 전시회를 하느라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특별히 개관전이라는 점에 주목을 했다고 한다. "예술 서적을 다룬다기에 그 안목을 믿었지요. 앞으로 사람들 좀 모으라고 전시회하자고 했어요." 잠시 작가의 생활에 대한 질문을 던져봤다. 현재 부인 이여경 씨와 충북 제천 외곽의 한 시골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논만 1천 평에 밭까지 일구고 있으니 제법 큰 농사다. 그의 집을 찾는 사람은 두 내외가 정성으로 농사지은 쌀밥과 직접 빚은 된장으로 만든 찌개와 채소 등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씨 내외가 시골살이를 시작한 건 1985년인가 경북 의성에서다. 80년대 민중예술 작업을 하던 그가 민중의 삶을 직접 체험해보고 싶어 결행한 것이었다. 이여경 씨도 반대하지 않았다. 아내가 출산을 하고 몸조리하는 동안 친구를 통해서 알아본 곳이 바로 의성. 산골짜기에 덩그러니 놓인 집에서 갓난애를 안고 힘겨운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매일 나무를 해 날랐지요. 전기도 겨우 들어오는 곳이라 밥을 짓든 불을 때든 나무를 태워야 했거든요." 농촌 초년병(?)으로 고생을 제법하고서야 나름대로 솜씨(?)를 가다듬은 뒤 제천으로 옮겼단다. "이사 첫날, 공짜로 나눠주던 쌀을 가지러 지게를 지고 갔는데 동네 사람들이 내기를 했다더군요. '저 친구가 지게로 쌀을 져낼까'하고요. 거뜬히 짊어지는걸 보고는 다들 놀랐다고 해서 웃은 적도 있어요."

이 씨는 이젠 농사도 제법 지어 자급자족하고 있다고 했다. 하루종일 농사를 지으면서도 목판화 작업을 계속해온 그는 이제 밤마다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다. 생각나는 대로 판화를 만들어 스캔하고 이를 이메일로 엽서처럼 보낸다.

자신의 작업도 꾸준히 올려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다. 대략 1천 장쯤 올렸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거듭 강조한 것은 '대중과의 소통'. 작가가 관심을 가진 선(禪) 풀이도 그래서 가급적 쉽게 풀어가고 있다.

현재 '조주록(趙州錄)'을 현대적으로 풀이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도 그 일의 하나이다. 그는 작업에서도 선적인 분위기가 풍겨온다. 해석도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하는 것"이고, "작품을 보고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면 된다."는 부연 설명이다.

1981년 첫 개인전을 열었으니 이제 화가 생활도 4반세기. 이런저런 전시회로 1년 반 정도 휴식 아닌 휴식을 하는 동안 "자신의 작품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회화보다 내용 전달 위주였던 작업에 대작 중심의 회화적 역량을 더 보태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생활 주변의 작은 것에서도 의미를 찾고 행복을 찾아내는 '이철수표 작품'은 여전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회는 23일까지 계속된다. 11일 오후 2~ 5시 작가와의 만남의 시간도 준비돼 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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