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국민이 장기판 졸(卒)?

입력 2006-11-09 10:54:19

열린우리당이 꺼낸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가 한나라당까지 들쑤셔 놓고 있다. 열린우리당 생각은 '노무현 대박'을 터뜨린 2002년 반쪽짜리 국민경선을 두 배로 키워, 자기 당 대선 후보 선출권을 일반국민에게 통째 넘겨주자는 것이다. 맨땅이나 다름없는 지지율에서 다시 정권을 잡겠다는 몸부림으로 당의 명운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새 간판을 달겠다는 정계개편도 오픈프라이머리를 밑밥 삼아 여기 저기 추파를 던지는 중이다.

한나라당은 뜬금없다. 열린우리당의 국민경선 흥행에 또 한 번 당할 수 있다고 바람을 잡는 쪽이 열을 내면서 하자 말자 갑론을박이다. 이른바 빅3 간에 당내 지지의 차이에 따라 입장이 갈리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절대 반대, 이명박 손학규 두 주자는 관망 또는 찬성 쪽이다. 공식적으로 내놓는 당론은 반대다. 하지만 얼마든지 바뀔 소지가 있다. 소장파 중심으로 도입 움직임이 만만찮고, 최근 대의원 지지에서 이 전 시장을 압도하던 박 전 대표가 하락하는 '사정 변경'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오픈프라이머리는 오직 내년 대선 승리만을 저울질하고 있다. 한국 정치 60년에서 낯설게 돌출한 제도가 단순히 정파 간 또는 대선 주자 간 이해 차원에서 주물러지고 있는 것이다. 명분이야 번지르르하다. '당직은 당원에게 공직은 국민에게, 체육관 후보에서 광장의 후보로'. 열린우리당이 내건 슬로건이다. 그 좋은 대통령 자리를 후보 선출부터 국민에게 100% 개방하겠다는 것이다. 정당의 본 모습이 아니다. 정당의 목적은 집권에 있고, 당원은 그 꿈 때문에 정당에 참여한다. 그런데 대선 후보 결정권을 국민 손에 넘기고 당은 빠진다고? 국민 참여로 선거의 민주성을 높인다고? 그럼 그 당은 바지저고리인가. 속이 뻔히 보이는 짓이다. 말할 것도 없이 집권 욕심에 국민을 들러리 세우려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전국 순회 쇼를 벌여 자기 당 후보를 띄워보려는 손님 끌기 이벤트다.

국민은 대선 후보 선출 방식에 목말라 있지 않다. 민생에 지쳐 있다. 새로운 희망을 줄 비전과 리더십을 한시라도 보고 싶다. 오픈프라이머리는 그런 현실을 고민한 흔적이 없다. 오로지 국민의 눈과 귀를 미혹에 빠뜨릴 궁리만 보일 뿐이다. 당심과 민심의 불일치 때문에 국민경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자기들 얘기다. 국민의 마음을 못 읽고 당내 실력자들 손짓에 따라 대의원들이 춤추는 정당이라면 그런 깜냥에 맞는 후보를 내면 될 일이다. 집권을 하고 말고는 그 당 사정이다. 공연히 생업에 바쁜 국민을 100만 200만 끌어들이는 것도 예의가 아닐뿐더러 그래놓고 '국민 후보'라고 포장한들 이제는 넘어갈 사람도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20개 주에서만 실시할 만큼 말이 많다. 2000년 2월 미시간주 공화당 오픈프라이머리에 참여한 투표자는 공화당원 48%, 무당파 35%, 민주당원 17%였다. 조지 부시는 아버지 부시의 후광으로 유력한 대선 후보로 주목받는 터였다. 하지만 뜻밖에 이곳에서 약체인 존 매케인에게 졌다. 부시는 공화당원한테는 66%를 얻어 매케인(29%)을 크게 앞섰으나 투표자 절반을 넘는 비공화당원(무당파'민주당원)이 매케인에게 몰표(83%)를 던졌기 때문이다. 이 결과를 놓고 비공화당원들이 민주당이 상대하기 쉬운 매케인을 공화당 후보로 만들기 위해 대거 참여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오픈프라이머리의 맹점인 역선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실증적 사례다. 선거 풍토가 더 어지러운 우리는 그 같은 작전세력이 더 설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초반 기세싸움부터 죽기살기로 불이 붙어 정당 간 후보 간 공작 활동과 음성적 비용이 난무할 것이고, 그리하면 지금껏 쌓아올린 선거질서는 도로 아미타불이다. 국민 참여는 빛 좋은 소리고 정치꾼만 우글거릴 것이다. 나라는 1년 내내 붕 떠 있을 것이다. 거의 해마다 선거 몸살을 앓는 마당에 대선이 그렇게 굴러가면 국가적 사회적 에너지 소모는 따져 보나마나다.

정 하겠다면 국민에게 물어야 한다. 국민 이름을 팔며 추가 선거비용까지 덤터기 시키면서 정치권 맘대로 선거법을 뜯어고칠 수는 없다. 누가 유리하냐 차원이 아니라 한국 정치 발전에 기여하느냐에 공감할 설득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김성규 논설위원 woosa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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