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개인적 역동성과 공동체 가치

입력 2006-11-09 08:53:28

해외에 다녀오는 길이면 의례히 방문했던 나라 사람들의 특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독일이나 일본 사람들이 신중하고 안정적이라면, 프랑스나 미국 사람들은 좀 더 개방적이고 개성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국민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런 느낌은 특히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과 조우하는 경우에 더 그러하다. 외국 어디를 다녀 보아도 우리나라 대학 캠퍼스처럼 예의 바르고 똑똑하며 성실하면서도 발랄한 젊은이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와 같은 느낌이 대체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한국인들은 정말 경탄할 만한 특성을 지닌 민족이 아닐 수 없다. 조선 왕조 500년간의 유교 통치와 35년간 일제의 군국주의 통치까지 받은 민족이 어떻게 이처럼 발랄하고 부지런하고 "끼"까지 있는 것일까! 물론 한국인들의 이런 특성을 급하고 침착하지 못하고 무질서하고 사려 깊지 못한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뛰어난 역동성을 지닌 민족이기에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거쳐 오면서도 오늘과 같은 경제발전과 정치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더욱이 어떤 특정의 보편적인 가치가 존재한다고 보고 그것을 일관성 있게 강조하기보다는 다양성과 특수성을 더 강조하는 21세기의 탈근대주의 시대에는 한국 사람들이 지닌 역동성이 더욱 더 빛을 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생각 끝에 의례히 이어지는 단상은 우리나라에서 일반인들이 정치에 대해 갖는 냉소적인 인식이다. 국민 개개인은 괜찮은데 정치가 이를 잘못 유도하는 것이 문제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만일 이와 같은 일반인들의 인식이 사실과 크게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란 본래 개인 수준의 한계를 보완해주기 위해 존재해야하는 것인데 오히려 개개인이 지닌 장점을 침해하는 형국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개개인이 지닌 가장 근본적인 한계는 전체 공동체의 이익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의식하는 경우라도 전체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게 되는 점이다. 흔한 예로서, 자기 집 마당의 눈은 열심히들 치우면서도 집 앞의 공용 도로에 쌓이는 눈은 너나할 것 없이 방치하여 결국은 교통마비가 초래되는 지경에 이른다. 정치는 바로 이처럼 개인 수준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위해서 존재한다. 다양한 선호체계를 소유한 개개인이 각자 능력껏 활동하며 살아가는 것이지만 그로 인해 초래되는 또는 개인 수준에서는 난이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가 일정한 기준과 범위를 설정하고 집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개개인의 활동 범위나 기준을 자칫 그릇된 방향으로 설정하고 집행하는 경우에 그 공동체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또한 방향에 있어서는 옳다고 해도 지향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활동을 지나치게 제약한다고 하면 개개인의 창의성을 위축하게 되어 결국 공동체 전체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20세기에 실험했던 공산주의나 파시스트 같은 전체주의 체제의 실패 경험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따라서 개인과 공동체 전체와의 관계는 상호 조화를 기하는 적절한 수준에서 설정되어야 한다. 개개인의 선호와 자유로운 선택을 기본으로 하되 전체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목표와 기준에 부합되도록 하는 적절한 수준의 개인-공동체간 연계가 그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는 비단 공동체 수준의 정치뿐만 아니라, 작건 크건 모든 형태의 조직 관리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생산을 목표로 하는 대학이나 연구소 같은 조직, 영리 추구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지만 창의성 또한 필요한 기업 조직, 그리고 좀 더 명확하고 일관된 목표의 집행이 주된 업무인 군대 조직 등의 경우에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로운 활동 범위와 기준은 각각 다르게 설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인들의 역동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그것을 동시에 공동체 전체가 지향해야 할 시대적 가치에 조화롭게 연계하는 정치는 언제쯤이나 가능해질까 생각해 본다.

정용덕(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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