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동안 표류해 온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방폐장)의 입지가 지난해 11월 2일 경주로 확정된 지 만 1년이 지났다. 양성자가속기 사업과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 등 3대 국책사업 추진에 따른 지역발전 기대감으로 경주시민 전체가 마치 '집단 최면'에 빠져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5·31 지방선거 등의 이유로 경주시가 신속하게 중장기적인 발전 계획을 마련하지 못하는 바람에 유치효과의 극대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양성자가속기 사업 후보지 결정과 한수원 본사 이전 문제로 읍·면 지역간 갈등의 골만 깊게 파였다. 게다가 각종 지원사업들도 별로 진전된 것이 없자 정부나 한수원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
◆경주가 변하고 있다
경마장과 태권도 공원 등 국책사업의 잇따른 실패로 좌절감에 빠졌던 경주 시민들에게 방폐장 유치는 새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했다. 그만큼 지역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방폐장 유치로 양성자가속기 사업과 한수원 본사 이전 등 3대 국책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3천억 원의 특별지원금이 전액 현금으로 지원됐다. 이자만 연간 120억 원이 발생해 어떤 사업에 써야 할지 고민이다. 방폐장 건설 사업비는 1조 원. 2010년 이전이 이뤄지면 연간 42억 원의 지방재정 수입이 발생한다. 1천여 명 직원의 소비 규모가 연간 100억 원에 달하고 협력업체나 부설 연구소 등이 속속 경주로 오게 된다. 2008년 12월 1단계 운영에 들어가면 반입 수수료만 연간 85억 원에 이른다.
이를 감안해 문화유적도시에서 첨단 과학도시로의 변화가 시도됐다. 지난해 분양을 시작한 천북산업단지에는 전체 공장 용지의 80% 정도가 분양됐으며 현재까지 한국원자력ENG 등 50개 업체가 입주를 마쳤거나 신축 중이다. 경주시는 11만 8천여 평의 공업용지를 추가 조성하고, 외동읍 일대에는 19만 평의 제2지방산업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방폐장 유치로 인구 증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경주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건립이 잇따르고 있다. ㈜현진이 경주 황성동에 총 604가구를 분양했다. 경주 남산지구 앞 도동택지지구에 430가구, 동천동 옛 군부대 자리에도 400가구의 아파트가 들어선다.
방폐장 유치 전 87개에 불과했던 일반건설업체 수가 현재 166개로 늘었고, 전문건설업체도 249개에서 305개로 증가했다. 이 때문에 기존의 건설업체들은 공사 수주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불평이 많다.
◆후폭풍
방폐장 인센티브를 유치하기 위한 '2라운드'가 본격화되면서 읍·면간 갈등과 반목도 심해졌다. 양성자가속기 사업은 과열 경쟁으로 탈락지역이 소송을 제기했다가 취하했다. 한수원 본사 이전을 놓고도 경주 도심권과 방폐장이 들어설 동경주(양북·양남면, 감포읍)가 대립하는 바람에 후보지를 올해 8월까지 선정키로 했던 일정이 늦어지고 있다.
한수원 본사 이전추진실의 김상조 사옥건설부장은 "경주시가 추천한 양북면 장항리와 지역주민들이 추천한 어일리 두 곳을 포함해 8곳 정도를 대상으로 기업의 효율성과 지역 발전 등을 고려한 타당성 검토를 거쳐 이달 말까지는 부지를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수원 노조원 75%가 이전반대를 밝히는 등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2010년까지 이전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부동산 가격도 치솟았다. 특히 방폐장이 들어서는 양북면은 한수원 본사 이전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안강읍 검단리와 천북면 모아리 등은 양성자가속기사업 유치전 등에 힘입어 땅값이 급등했다. 양북면 어일리 이수도(64) 씨는 "평당 5만∼7만 원하던 양북면 일대 토지가 방폐장 및 신월성원전 1, 2호기 건설, 한수원 본사 이전 후보지라는 이유 등으로 5, 6배씩 뛰었고, 몇 천 원대이던 임야가 4만∼5만 원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남은 과제들
방폐장 유치 이후 양성자가속기 사업 결정에서 보듯이 읍·면·동 간의 갈등이 심화됐고 후유증도 심각하다. 앞으로 한수원 본사이전과 유치지역 지원 사업의 지역 배분 문제 등에 따른 갈등과 후유증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예상돼 이를 어떻게 잘 해결할지가 큰 과제다.
당초부터 경주시가 민간기구의 결정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방폐장 유치 직후 한수원 본사 및 양성자가속기 사업 배치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마스터 플랜을 마련해 이를 토대로 지역발전 방향을 제시했어야 옳았다는 지적이 많다.
경주대 황성춘(토목공학) 교수는 "정부나 한수원 모두 방폐장 유치 당시의 약속이행이 지지부진한 것 같다."며 "경주시도 경주 발전을 위한 중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해 각종 사업이나 현안문제를 추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희망시민연대 김성장 공동대표도 "한수원 본사 이전 후보지 결정 이후 탈락지역에 대한 배려, 3천억 원의 특별지원금과 연간 85억 원 정도의 반입수수료 사용 방안 등에 대한 시민 공감대 형성도 과제"라고 말했다. 이들은 또 경주시뿐만 아니라 시의회, 학계, 시민사회 단체 등이 머리를 맞대고 폭넓은 여론수렴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는 주문도 했다.
경주·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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