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기 있는 직업 1위인 '공무원'. '공시(공무원고시)'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공무원은 직업 선택의 1순위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3월 대구시 9급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은 자그마치 73대 1. 합격의 영광을 안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지만 '직업적 안정성'이 그들을 사로잡았다고 말한다.
◇공무원 되기 쉽잖네=합격의 기쁨을 누리기까지 보통 4번의 쓴 잔은 기본이다. 새내기 공무원 손모(30·여) 씨는 2년 동안 12번이나 실패를 한 끝에 공무원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지난 6월 이후 임용된 대구 8개 구·군 행정직 9급 공무원 17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평균 낙방 횟수(?)는 3.8회. 한 번에 붙은 경우는 10명(5.8%)이었고 10번 이상 떨어진 경우는 11명이었다. 101명(59%)은 합격까지 '2년 정도 걸렸다'고 답했다. B(28)씨는 "3년 동안 8번 낙방한 뒤에야 합격했다."며 "보통 2년 정도는 공부해야 한다지만 지원자 수가 너무 많아 그마저도 쉽지 않다."고 했다.
A(28)씨는 공기업, 대기업 가리지 않고 50번 넘게 입사원서를 냈지만 다 떨어졌다. 대구지하철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전력 등 안 쳐본 곳이 없을 정도. 그래서 공무원으로 눈길을 돌렸고 시험 공부에다 ▷정보처리기사(가산점 3점) ▷워드프로세서자격증(1.5점) ▷컴퓨터활용능력자격증(2점) 등을 따는 노력 끝에 4년 만에 공직 입성에 성공했다.
시험을 준비하는 데 드는 경비도 만만치않다. 이들의 한 달 평균 지출비는 32만 원. 조사 결과 20만 원 이내가 36%(63명)로 가장 많았고 30.9%(53명)가 50만 원 이내라고 답했다. 100만 원 이상 썼다는 응답자도 2명이나 됐다. 매달 학원비와 강의료, 교재비 등으로 70만 원 정도 지출했다는 C(28·여)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 '주경야독' 했다."며 "모아둔 돈이 많아야 마음 편하게 공부할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가산점을 얻기 위한 '자격증 따기'도 보통 일이 아니다. 조사 결과, 159명(93%)이 정보처리기사, 사무자동화산업기사 등 1개 이상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D(30)씨는 "1, 2점 차로 떨어지는 경우의 수에다 국가유공자 가산점을 감안하면 자격증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승패가 갈라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이 좋아요=지난 6년 간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액세서리 전문점을 운영했던 정호태(34) 씨. 정 씨는 불경기로 영업수익이 줄자 미련없이 사업을 접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당시 임신 5개월이었던 아내도 남편을 격려했다. 정 씨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공무원을 선택한 데 한 치의 후회도 없다."며 "실제 공무원이 된 뒤 휴일도 쉬지 못했던 자영업자 시절보다 '삶의 질'이 훨씬 나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지 1년 6개월 만에 한 구청 사회복지과로 발령받았다.
이번 조사 결과, 5명 중 1명이 직장이나 사업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E(29·여)씨는 "대학 졸업 후 금융기관과 벤처기업, 중소기업 등 여러 직장을 전전했지만 결국 공무원만한 직장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적성보다는 안정성=공대 출신의 F(27·여)씨는 "다각도로 취업준비를 했지만 이공계 출신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러 차례 좌절을 맛봤다."며 "결국 안정성을 믿고 공무원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새내기 공무원들은 공무원 지망 이유로 60.8%(104명)가 '안정성'을 꼽은 반면 '적성에 맞다'는 응답은 19.2%(33명)에 그쳤다. 이는 자신의 적성보다는 '짤릴' 위험이 적고 경기를 타지 않는 공무원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공과도 크게 달랐다. 행정직과 별다른 연관이 없는 기계공학, 항공기계학 등 공대 출신이 22.2%(38명)를 차지했고 간호학이나 물리치료 전공자도 있었다. 반면 공무원이 되기 전에 봉사 활동을 해 온 공무원은 2명에 지나지 않았다. G(24·여)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전부터 '홀몸어르신 도시락 배달' 등 봉사활동을 했다."며 "봉사활동은 정신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추세를 걱정하는 내부의 목소리도 있다. 한 구청 간부는 "20~30년 전에 비해 공무원 위상이 크게 높아져 뛰어난 재원들이 공기업과 공무원으로 쏠리고 있는데 이는 꼭 바람직한 현상만은 아닌 것 같다."며 "'안정추구형' 공무원이 과연 공직에서 '도전'이나 '가치창출'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장성현·서상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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