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여성백일장] 산문-여고부 장원 양지현 作 '손가락'

입력 2006-11-03 07:53:56

손가락

양지현/ 군위여자고등학교 2년

"아이고, 새끼 두 마리 살렸다."

"다 낳았드나? 몇 마리드노?"

"여덟 마리드라."

"많이 못 낳았네."

새벽 2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곤히 잠이 들었을 시간. 그 시간에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농장으로 향하시는 우리 엄마. 또 손가락을 어루만지며 쓰린 표정을 억지로 삼키신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남들이 듣는 순간 인상부터 찌푸리는 돼지 농장을 하신다. 냄새나고 힘든 이 일을 벌써 20년이나 해오셨다. 그 긴 시간 동안 변해버린 건 몸 속 가득 깊게 밴 지독한 돼지 냄새와 온갖 상처, 관절염 그리고 엄마의 손가락.

"아, 현아 연고 없나?"

"왜? 또 손가락 아프나?"

"어제 새끼를 끄집어냈더니 또 쓰리네."

사람들이 아기를 낳을 때 아기가 나오지 않으면 제왕절개를 하듯 돼지 역시 새끼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럴 때 하는 방법은 바로 사람의 손을 돼지 몸으로 집어넣어 끄집어내는 것이다. 잔인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어미와 새끼돼지 모두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 일을 하고 날 때면 항상 우리 엄마의 손가락은 빨갛게 변해버리고 만다. 손가락들이 고통을 참지 못해 피가 비치는 것이다. 이 일을 20년이나 해 오셨다. 덕분에 돼지가 늘고 늘어 우리 농장은 크게 발전했지만 엄마의 손은 나날이 그 빛을 잃어가게 되었다.

"엄마, 등 긁어줘."

"오냐."

"엄마 손이 왜 이렇게 까칠해?"

"일 하니까 그렇지."

"병원 좀 가라니까. 손이 이게 뭐고. 손가락마다 살도 다 일어나고 빨갛잖아. 이제 돼지 말고 다른 일 하면 안 되나?"

"니들 대학 보내야지."

"대학 안가도 된다."

"됐다. 그런 소리 하지마라."

"엄마…."

매일 빨간 핏빛으로 닳아있는 엄마의 손가락들. 피부는 다 일어나고 마디마디의 경계도 잃어가는 엄마의 손은 그렇게 20년 동안 자식들을 위해 희생되어 왔다. 단 한 번도 엄마에게 연고 하나 사 드린 적이 없는 못난 딸이지만 그 누구보다 엄마의 못난이 손가락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엄마는 알고 계실까.

엄마, 엄마의 손이 못난이 손으로 변해 그 빛을 잃었어도 내게 엄마의 손은 세상 그 어떤 이의 손보다 더 아름다워요. 언제까지나 제 곁에서 그 손가락들로 저를 따스히 감싸주세요. 그리고 이젠 제가 엄마의 멋진 손가락이 되어 드릴게요. 사랑합니다! 당신의 못난이 손가락들까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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