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농촌체험] (24)상주 봉강팜스테이 마을

경북은 산이 많다. 전체 면적 중 산이 70%에 이른다. 그만큼 넓은 들을 보기가 힘들다. 하지만 상주에 가면 다르다.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황금들녘에 가슴이 탁 트인다. 산과 산 사이를 절묘하게 휘돌아 펼쳐진 모습이 지평선까지 쉼표 하나없이 이어지는 전라도의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고즈넉한 풍경에 마음마저 풍성해질 무렵 버스는 어느새 마을 입구에 들어선다. 대구를 떠난 지 1시간 30분. 여행하기에 적당한 거리다. 마을 주민 환영을 받는 체험객들 눈동자도 생기가 넘친다. 오늘 어떤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제는 시골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풍구(낟알과 티끌 ·쭉정이·왕겨 등의 잡물을 가려내는 장치), 새끼 꼬는 기계 등 골동품이 전시된 농기구박물관에선 오래된 옛 친구를 만난 듯하다. 유년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부모들 모습이 행복해보인다. "어때, 아빠가 많이 알지?" "네, 아빠는 정말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물고기는 언제 잡아요?"

등쌀에 모두들 서둘러 양어장으로 향한다. 어른 팔뚝만한 향어를 낚아올릴 생각에 벌써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비록 대나무로 만든 초라한 낚싯대이지만 작은 행복을 낚기에는 충분하다. 처음 낚시를 해본다는 김분희(46·여) 씨도, 베테랑 강태공 이정수(40) 씨도.

이내 함성이 터진다. 낚싯대가 활처럼 휜 게 대물인 모양이다. 모두들 기념사진 찍기에 열중이다. 잡은 물고기는 모두 제 자리로 돌려줬지만 마음만은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다.

트럭 짐칸에 올라타 꽂감깎기 체험장으로 달려간다. 귓가를 스치는 가을 바람이 꽤나 차갑다. 그래도 아이들은 처음 해보는 '트럭킹'에 마냥 신이 난다. 하기야 어디 도시 같으면 생각이나 해볼 수 있는 일일까!

쌀, 누에고치, 곶감 '삼백의 고장', 상주는 상강(霜降) 즈음이면 감깎기가 한창이다. 속된말로 혼자 일어날 힘만 있으면 모두 감을 깎는단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 작업도 어느 정도 기계화됐다. 자동으로 돌아가는 틀에 감을 끼운 뒤 칼을 갖다대면 된다. 그래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생각만큼 예쁘게 되지 않는다.

저녁 식사에는 메뚜기볶음이 최고 인기다. 어른들은 "진짜 오랜만에 먹어본다."며 젓가락 놀리기 바쁘고 난생 처음 보는 반찬에 기겁을 하던 아이들도 금세 한 가마솥 밥 한 그릇씩을 뚝딱 비운다.

직접 떡메를 쳐 만든 인절미와 숭늉으로 입가심을 한 뒤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다. "살아있는 땅에서 나는 농산물이 인체에 이로운 성분이 훨씬 많아요. 배추도 뿌리를 보면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것은 잔뿌리가 많이 있습니다." 강사로 나선 친환경농산물유통업체 '정도'의 김대견(38) 대표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이튿날 아침, 간밤 막걸리잔치의 숙취를 다슬기국으로 달래고 배밭으로 뛰어간다. 농장 대표 김광식(54) 씨가 공들여 키운 무농약 배밭에는 메뚜기가 지천이다. 우장헌(11)이는 도마뱀을 잡고 이윤석(8)이는 청개구리를 잡아 자랑하기 바쁘다.

소형 트랙터를 타고 나서는 배밭 드라이브는 상쾌하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들은 걱정 반 부러움 반이다. '혹시 떨어지지않을까?' '우리는 안 태워주시려나.'

낫 하나씩 받아들고 마을 앞 논에서 벼베기체험이 시작된다. 주민 김태봉(64) 씨의 시범을 보고 난 뒤 모두 자세를 잡는다. 보기보다 쉽지 않지만 모두들 열심이다. 농부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순간이다. 우리가 먹는 한 끼 밥이 얼마나 많은 농부들의 땀과 손길로 이뤄지는지 알고 나니 절로 경건해진다.

돌아오는 길, 낙동강 경치 중 가장 아름답다는 경천대(擎天臺)에 오른다. 조금은 가파르지만 아이들 손을 잡고 오르는 길은 즐겁기만 하다. "얘들아, 우리나라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 많지? 우리 다음에는 어느 마을에 가볼까?"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