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은 10월의 마지막 날. 여느 하루와 다름없지만 10월의 마지막 날은 많은 사람들에게 다르게 느껴진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로 시작되는 노래탓이다.
1981년 발표된 이용의 '잊혀진 계절'. 사반세기나 된 노래지만 '잊혀진 계절'은 여전히 잊히지 않고 40대 중후반 이상의 세대들에게 '짠'한 그리움을 준다.
지난 주말 팔공산을 찾았다 떨어진 잎들이 가득한 거리를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다는 홍모(46·여·달서구 상인동) 씨는 "10월 말만 되면 찾아오는 병이죠."라며 긴 한숨을 내쉰다. 홍 씨는 "그래도 이 때만큼은 사춘기 소녀시절로 돌아가는 것같다."며 '잊혀진 계절'의 멜로디를 낮은 목소리로 따라했다.
"지금은 그 노래를 들으면 아련하지만 예전에는 안 그랬죠." 김인섭(49·달서구 도원동) 씨의 기억은 노래와 함께 되살아난다. 20대였던 당시는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군사정권의 시퍼런 서슬 아래서 숨을 죽여야 하던 시대였지만, 기억은 군사문화나 야간 통행금지와 같은 씁쓸함보다는 그저 아득한 그리움만을 끄집어낸다. '불혹(不惑)'을 넘긴 지도 한참이지만 젊은 시절을 추억하면 아직도 '혹(惑)'한다는 김 씨는 "오늘 퇴근 후 아내랑 데이트하던 학교 교정을 거닐어볼까 한다."며 "옛 기분도 낼 겸 근처에서 맥주라도 한 잔 할 생각"이라고 했다.
1945년 9월부터 37년간 지속된 야간 통행금지 조치는 1982년 1월 5일 오전 4시를 끝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이들 세대의 통금 관련 기억들은 고스란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형우(51·상주시 신봉동) 씨는 "통금 때문에 집에 가지도 못했지. 그러나 이를 잘 '악용(?)'한 덕분에 지금 마누라를 델꼬왔어. 알고도 속아준 거겠지."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 씨는 "세월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또 한 살을 더 먹는구나 싶은 건 연말이지만, 이렇게 또 무상하게 세월이 가는구나 싶은 건 잊혀진 계절이 흘러나오는 요즘 같은 때"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처럼 40, 50대 중년들이 '10월의 마지막 날'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날 하루만큼은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중년의 기념일처럼 돼버렸기 때문.
성한기 대구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는 "40대 이상이 되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생각과 다시는 젊은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아쉬움이 더해지면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대리만족을 하게 된다."며 "지금보다 경제적, 정치적 여건이 좋지 않았지만 '그때가 참 좋았다.'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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