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

입력 2006-10-28 16:44:44

강준만 지음/ 인물과 사상사 펴냄

2004년 1월 16일 개봉한 '말죽거리 잔혹사'(유하 감독). 1978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의 주인공 현수(권상우 분)는 "강남의 땅값이 엄청나게 오를 거라는 엄마의 말 때문에 이곳으로 이사왔다."고 독백한다. 이 말은 사실이다. 이 해 1월 31일자 한 중앙 일간지 기사에는 "실존 인물이라면 현수네는 부자가 됐을 것"이라는 내용이 실렸다.

"1950~1960년대 후반 한 평에 수십 원하던 땅이 현재 주거지역은 평당 1300만~1500만 원, 상업지역은 3000만 원이 넘을 정도로 값이 올랐기 때문이다."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렇다. 1966년 4월 4일 군 출신으로 박정희를 뺨칠 정도로 '군사작전식 개발 의욕'에 충만한 '불도저' 김현옥이 서울시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대한민국 강남 신화'는 시작됐다. 한국 비평문화의 새 장을 연 탁월한 사회비평가 강준만 교수는 이제 그 비판의 칼을 '말죽거리 신화'와 '타워팰리스'로 상징되는 강남으로 돌린다.

강남 개발의 역사를 1960년대부터 10년 단위, 최근의 이슈에 따라 살펴보면서 한국, 한국인의 독특한 특성을 읽어낸다. 이에 따르면 '강남 신드롬'엔 재앙적인 측면이 있으면서도 오늘의 한국을 만든 원동력이기도 했다. 아파트 문화의 선구자이고 욕망의 용광로이자 구별짓기의 아성이다. 이는 바로 한국의 초고속 성장을 극적으로 대변해주는 지역이다. 그렇기에 가장 한국적인 곳이 강남인 것이다.

말죽거리에서 타워팰리스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바로 '욕망의 대질주'가 펼쳐진 곳이다. 그 욕망은 바로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굴러가게 하는 동력 역할을 한다. 한국형 자본주의에서 욕망의 최상층부에 있는 강남은 또 강력한 서열화, 강한 경쟁심과 모방심에 의해 움직이는 한국형 자본주의를 이끈다. '강남적'이면 바로 '전국적'이 되는 것이다. 아파트 재건축에서 아파트 내부 개조 붐까지, '강남 아줌마'의 호전적 여성성을 잘 보여주는 자녀 교육에서 재테크까지, 한국 사회 거의 모든 면에서 강남은 리더십을 발휘한다.

"'영토 부족에 대한 강박관념'과 더불어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는 현대적인 삶을 상징했고 고도성장의 포드주의적 양산체제에 더 들어맞았다."는 한 프랑스 대학 교수의 연구 결과가 나올 정도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아파트 공화국' 한국, 그 중에서도 강남이 걸어온 길의 종착점은 결국 부의 편향, 획일적 생활양식 촉진, 배타성과 폐쇄성 증대이다.

강 교수는 마지막에 "한국형 자본주의의 진로를 수정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면서도 "괜히 사람들끼리 미워하지 말고 강남을 한국 시스템의 전형이자 엔진으로서 고찰해 보자."고 말한다. '적의 실체를 바로 알아야' 적을 깨부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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