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말
윤태혁
아픔니까. 사람은 아파야 되지요
싱싱한 나무에도 시든 이파리가
있는 법이지요 아픈 데가 있어야
살아있다는 실감이 나지요.
아픈 데가 없으면
그건 죽은 거나 같습니다
매미소리, 소쩍새 울음, 귀뚜라미소리
그 울음이 있으므로 '자연'을 느끼지요
그 울음은 환자의 울음입니다
아프면 친구나, 먼 친척이 곁을
떠난다는 것을 느끼지요. 점점
조용해질 것입니다. 그럴 때 추억이
되살아납니다. 추억은 아름답고
찬란합니다. 지는 해를 수없이
봐 왔지요. 그러나 해는 또 뜹니다
그것은 아픔을 느끼게 하는 귀중한
원리입니다. 내내 아프십시오.
'병이 들었다'는 '살아있다'의 또 다른 말입니다. '죽음'에는 '병'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아픔'은 '살아있음'에 대한 자각입니다. 결국 '사람은 아파야' 삶을 실감하게 됩니다. 또한 아프면 주변이 '점점 조용해'집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다는 말이지요. '추억이/ 되살아'날 수 있는 여유를 가집니다. 결국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육신의 병이 '나'를 되살려 주는 것이지요. 자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픈 데가 없으면/ 그건 죽은 거나 같습니다'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픔'은 '나'를 깨우는 육신의 신호라 하겠습니다.
구석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