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

입력 2006-10-21 16:57:03

글 한영우·사진 김대벽/ 열화당·효형출판 펴냄

'오백 년 조선 왕조의 역사는 기쁨과 슬픔이 오가지만 궁의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사람의 손길은 멀리하되, 자연의 흥취는 한껏 살린 인간적이고 안락한 궁전이 여기 있다.'

조선을 대표하는 궁궐로 경복궁이 많이 꼽히지만, 역사에 따르면 조선의 국왕들이 가장 오랫동안 머문 장소는 창덕궁과 창경궁이라고 한다. 그만큼 이곳 동궐(東闕, 창덕궁·창경궁을 모두 이르는 말. 정궁인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해 붙은 이름)의 역사는 영광과 치욕이 교차한다.

그 역사는 이미 흘러간 것이지만 후손인 우리가 찾아가 보고 즐기는 두 궁궐과 후원(또는 비원)의 아름다움은 누구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태조 4년(1395) 9월 준공한 경복궁에 이어 태종 5년(1405) 10월 준공된 창덕궁, 성종 15년(1484) 9월 준공한 창경궁이 조선 왕조 역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태종 때부터이다.

이는 경복궁에서 왕권을 둘러싼 골육상잔(骨肉相殘)의 비극 '왕자의 난'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복동생을 폐위시켜 죽이고, 개국공신마저 살해한 태종은 창덕궁을 건설해 이곳에서 주로 거처했다. 이후로는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고는 경복궁보다 창덕궁을 선호하는 경향은 계속됐다.

다른 이유도 있다. 경복궁은 북으로 백악산(白岳山)과 서로 인왕산(仁王山)에 노출돼 있지만, 창덕궁과 창경궁은 깊은 숲에 가려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것. 그리고 아름다운 후원이 있어 왕족들로부터 더 사랑받았다.

조선 왕조에서 사랑받았기에 동궐에서는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창덕궁 인정문(仁政門)은 임금의 즉위식이 치러진 공간이다. 연산군·효종·현종·숙종·영조·순조·철종·고종 등 여덟 임금이 이곳에서 왕위에 올랐다. 이들 중에는 반정으로 쫓겨나기도, 역대 왕 가운데 가장 오래 재위에 머물기도, 망국의 과정을 직접 지켜본 이도 있다.

지금은 사라진 건물도 있다. 창덕궁 중희당(重熙堂)은 정조가 편전으로 사용한 곳으로 문효세자를 위해 지었다. 창덕궁 건물 가운데 가장 크고 멋들어졌으며, 넓은 마당에 풍기(風旗)·해시계·측우기까지 놓여있던 곳이다. 그러나 고종 28년(1891) 이후 기록에서 사라졌다. 오직 동궐도를 통해서만 그 모습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성종 15년 완성된 창경궁은 왕조와 운명을 함께했다. 홍화문(弘化門)은 임금이 일반 백성과 만나는 장소였다. 문정전(文政殿)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곳이기도 하다.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선에 자리한 낙선재(樂善齋)에는 마지막 왕족이 머물렀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순종이 이곳에서 통한의 세월을 보냈고,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 여사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여기에서 살았다. 지난 8월 작고한 마지막 황세손 이구의 빈청(殯廳)도 이곳에 세워졌다. 일제에 의해 창경원(昌慶苑)으로 이름이 깎이며 동식물원으로 탈바꿈된 오욕의 현장이기도 하다.

동궐의 속살, 후원(後苑)은 자연 속에 포근히 안겨있는 형태로 사치를 멀리하고 검소함을 숭상한 조선 임금의 정결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때 100여 개 이상의 누각과 정자가 자리했던 9만여 평의 왕실 정원에는 이제 누(樓) 열여덟 채, 정자 스물두 채만이 남아있다. 그러나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이곳에는 널찍한 바위와 폭포, 정자가 어우러져 한 폭의 선경(仙境)을 연출하는 옥류천 일대 등 비경이 가득하다.

조선 왕조사 연구의 권위자인 한영우 교수는 '동궐도(東闕圖, 국보 제249호)'라는 옛 지도를 들고 직접 동궐을 찾아 읽는 이들을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 속으로 안내한다. 그 길에는 문화재 촬영에 일생을 바친 사진가 고 김대벽 선생(지난 9월 타계)이 함께했다.

일반인이 쉽게 닿을 수 없는 공간까지 카메라로 담아내 읽는 이 누구나 그 생생한 현장에 동행하는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사라진 건물은 동궐도를 통해 되살리기도 하며 구석구석 놓인 아름다운 전통 건축물을 하나하나 쫓아가며 듣는 역사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끔 귀에 익은 명칭도 있지만 대부분이 익숙지 않아 읽는 속도가 늦춰질 수도 있겠지만, 실록에 기록된 역사 속 이야기며 고인이 심혈을 기울여 찍은 사진 자료를 읽고 보는 것만으로도 책장을 넘기는 손을 가볍게 한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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