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임금이 된 나그네

입력 2006-10-17 07:05:32

얘야, 들판을 바라보니 벼들이 누렇게 잘 익었구나.

어디선가 꽹과리 소리와 함께 풍년가가 들려올 것만 같구나.

앞으로는 제발 태풍이 더 오지 않아야 할 텐데……. 그래야 먹을 것이 넉넉해지고 먹을 것이 넉넉하면 사람들도 더 푸근해지지 않겠니?

그러고 보니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구나.

남태평양의 어느 조그마한 섬나라의 이야기란다. 이 섬에는 아주 재미있는 풍습이 있었지. 배가 난파해서 사람이 섬으로 표류해 오면 구해줄 뿐만 아니라 1년 간 추장 노릇까지 하게 해준 다음, 1년이 지나면 처음 섬에 올 때의 모습 그대로 바다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란다.

어느 날, 한 남자가 부서진 갑판 조각을 타고 이 섬으로 표류해 왔지. 섬사람들은 이 남자를 구한 다음, 새 옷을 입히고 왕으로 모셨단다.

"우리 섬사람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바깥세상의 많은 지식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좋소. 함께 연구해 봅시다."

왕이 된 이 남자는 매우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단다.

"그런데 전의 왕은 어떻게 하였소?"

이 남자는 전에 왔던 두 사람의 얘기를 들었지.

"네, 바로 앞의 왕은 보석을 많이 모았답니다. 우리들에게 보석을 많이 가져오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이 섬에 그런 돌은 흔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져다 주었습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그 왕은 널빤지를 타고 왔으므로 다시 널빤지에 태워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왕은 보석이 너무 무거워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그만 물에 빠져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음, 그 전의 왕은 어떠하였소?"

"그 전의 왕은 먹고 노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매일 먹기만 하고 운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늦잠만 자고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1년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시 바다를 헤엄쳐 가도록 했는데 몸이 너무 무거워 제대로 헤엄을 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왕도 그만 물에 빠져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허허, 그것 참!"

이 남자는 혀를 끌끌 차면서 자신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지. 이 남자는 우선마을의 제일 높은 산에 올라가서 사방을 살펴보았단다.

그는 가까운 곳에 있는 섬이 무인도라는 것을 알았지. 그래서 이 남자는 날마다 배를 타고 섬으로 건너가 부지런히 일을 하였단다. 밭을 일구어 과일나무도 심고, 샘도 파고, 집도 지었지.

그러다 보니 마침내 1년이 지나갔지. 이 남자는 섬의 풍습에 따라 처음 이 섬에 올 때의 모습대로 섬을 떠나게 되었단다. 마침내 이 남자는 나무 조각을 붙잡고 헤엄을 치게 되었지. 그러나 그 동안 일을 많이 해서 힘도 길렀고, 물길도 유심히 관찰해 두었기 때문에 쉽게 이웃 섬까지 헤엄쳐 갈 수 있었단다.

그리하여 이 남자는 정말로 그 섬의 왕이 되었단다. 그 섬에는 곡식이 넉넉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이 남자는 그 사람들을 모두 백성으로 받아들이고 잘 보살펴 주었단다.

심후섭 아동문학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