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다녀온 팔공산 동봉쪽은 봉우리서부터 이미 울긋불긋 진하게 물들어 내려오고 있었다. 오랜 경기 침체로 모두들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있는데다 북한 핵실험으로 나라 안팎이 매우 어수선한 가운데 2006년 가을은 시나브로 깊어만 간다.
대구시가 최근 '대구의 가을명소 9곳'을 추천했는데 이 가운데 첫 번째가 '수목원 코스모스 동산'이란다. 높푸른 하늘아래 수목원 코스모스 무리가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며 그 자태를 아무리 뽐내도, 어느 '시어머니'의 방에 한 다발 풍성하게 꽂혀있을 '그 꽃' 만 할까…
최근 도심 한가운데 어느 마당 너른 식당에 간 적이 있다. 남향의 양지바른 집이다. 주차장으로 닦은 마당가 울퉁불퉁 조경석으로 단장한 화단에는 채송화, 팬지, 수국, 해바라기, 국화 등 사철 크고 작은 꽃들이 돌아가며 피는 집이다.
식당 출입문을 들어서면, 얼른 보면 생화처럼 보일 정도로 잘 말린 야생화들이 풍성하게 마른향기를 내며 흐드러져 있다. 구절초, 용담, 노담새 …
이 날도 친구와 밝은 창가 자리에서 식사를 마치고 차를 놓고 앉아 있는데, 가까운 곳에서 들려온다. "사장님 이 꽃 한 송이만 뽑아 주세요…" 중년의 주부가 딸로 보이는 젊은 여성과 함께 마른 야생화 사이에 꽂힌 싱싱한 코스모스 다발 앞에 서있다. "코스모스 한 송이 가져가서 뭐할라꼬?" 평소 입담 좋기로 소문난 여사장이다. "저… 저희 시어머니께서 코스모스를 좋아하시는데…" "머라카노. 임자가 좋아하는 게 아니라 시어머님께서 좋아하신다고 한 송이만 달라꼬?" 식당 사장은 슬리퍼 털털 끌며 다가와선 코스모스를 다발채로 뽑아 비닐 봉투에 뿌리 쪽을 담아 신문지에 둘둘 말아 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누구든지 말만하면 싸줄려고 기다렸던 것처럼.
부인이 두 손을 내 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한 송이만 얻어 가면 되고, 이 예쁜 가을꽃을 손님들께도 고루 보여 드려야지요…" "머라카노, 예쁜 가을꽃 보면서 시어머니 드릴 생각하는 임자 마음이 이 꽃 보다 훨씬 더 곱고 이뻐… 몽땅 싸갖고 가서 시어머님 방에다 듬뿍 꽂아드려…"
풍성한 꽃다발을 한 아름 받아 든 부인은 몇 번이나 고맙다면서 인사를 하곤 나갔다. '중년의 며느리'가 '노 시어머니'를 위해 평소 좋아하신다는 꽃 '코스모스'를 구해서 간 것이다. 식당 사장은 "꽃 주인 만났다"며 좋아했고, 이를 지켜본 손님들도 모두 이 '보기 좋은 그림(?)'에 마음을 뺏기고 있었다.
이현경 밝은사람들-홍보실닷컴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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