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소녀 시절 소풍이나 수학여행, 운동회는 설레임이었다. 밤새 잠을 잘 수 없고, 새벽 일찍 깨어나기 일쑤였다. 평소 먹고 싶었던 달걀, 땅콩, 밤, 고구마, 사이다를 실컷 먹을 수 있고, 동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이다. 특히 기차를 타고 떠나는 수학여행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추억의 대상이다.
영주시 동부초등학교 졸업생들은 4년 전부터 '추억의 수학여행'과 '추억의 운동회' 행사를 갖고 있다. 불혹(不惑)의 나이부터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까지 동창생들이 함께 세월을 거슬러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행사다.
그 중심에 동부초교 총동창회장이자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인 서병문(徐丙文·63) 비엠금속 대표가 있다. 2003년 총동창회장이 되자마자 즐거운 동창회를 만들기 위해 '추억의…'를 기획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우선 동창생들이 즐거워했고 각 언론에서 이 행사를 조명했다. 서 회장은 "참 신기한 것은 나이가 들수록 참석율이 높고, 700~800명이 함께 행사를 가져 마시고 먹고 놀아도 사고 하나 없다는 점"이라고 자랑했다. 수학여행과 운동회를 격년으로 개최하는데 올해는 운동회 순서로 22일 모교 운동장에서 가질 예정이다.
역도산 같은 우람한 체격을 가진 서 회장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배구를 잘해 영주고교 시절 배구선수로 뛰며 도민체전 등 각종 경기에서 활약, 경희대 체육과에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했다. 대학 시절 배구와 함께 유도도 했다. 그렇게 다진 체력을 바탕으로 그는 ROTC 5기로 소위로 임관, 군에 투신하게 된다.
마침 그가 근무한 곳이 수도경비사령부로 대대장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모셨다. 중대장이 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이었고, 김진영 전 육군 참모총장은 옆 중대 중대장이었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도 함께 근무했다.
1981년 예편한 그는 지금도 전 전 대통령을 찾아 뵙는 등 5공 실세들과 유대가 좋아 어떤 측면에선 출세가 보장돼 있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권력이 아니라 기업. 그해 6월 부도로 회사정리절차가 개시된 부산의 BM금속에 관리담당 임원으로 입사한 것이 계기였다. 1천300여 명의 직원에 고작 80억 원 매출밖에 올리지 못하는 기업이었으나 기술력 등을 감안할 때 직원들 사이에 만연한 패배의식만 극복하면 회생 가능하다고 보고 업체를 아예 인수했다.
CEO가 된 그는 직원들과 함께 뒹굴었다. 새벽에 통근 버스를 타도 처음엔 직원들이 사장인줄조차 몰랐다. 결제를 하려면 회계를 알아야 된다고 판단해 직원들 몰래 6개월간 부기학원을 다녔다. 회사 경영자료를 완전 공개하고 강성 노조와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섰다. 쌀과 라면에다 소주를 사서 어려운 직원들의 집을 방문해 고충을 들었다. 생산 현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땀 흘리며 일하기도 했다. 그렇게 노력하니 직원들이 CEO를 신뢰하게 됐다.
그후 20년. 부단한 구조조정으로 직원 수를 종전의 5분의 1인 250여 명으로 줄였으나 매출은 연간 500억 원으로 6배 늘었다. 2001년 예정보다 3년 일찍 법정관리에서 졸업했다. 특히 올 2월에는 부산에 있던 공장을 진해 마천주물공단으로 옮기는 경사를 맞았다. 멋진 조경과 안락한 작업환경을 가진 호텔같은 초현대식 공장으로 서 회장이나 직원 모두 '우리나라 최고의 주물공장'이라고 자신한다.
한국주물조합 이사장은 올해 4임으로 10년째 맡고 있다. 올 2월에 투표에서 회원 229명의 75% 지지를 얻었다. 선철과 후란수지, 훼로실리콘 등 원·부자재를 공동구매해 회원사에 값싸게 공급하고, 조합 운영에서 한치의 사심을 보이지 않는 그를 회원들은 신뢰하고 있는 것.
리더십의 비결을 물었더니 "사람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사귀는 것"이라고 했다. 머리로 사귄 만남은 결국 단절되지만 가슴으로 사귀면 언제까지나 만남이 계속된다는 얘기다.
영주에서 추진하고 있는 체육부대 유치운동에 대해 그는 반대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대학인 소수서원이 있는 등 영주는 교육도시로 적합하지만 체육부대는 부대원이 적어 지역 경제 파급력이 적다는 것. 그는 대신 성남에서 이전하려는 육군종합행정학교 유치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재왕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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