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7회 전국체전이 17일부터 23일까지 김천에서 열린다. 경북으로서는 1981년 대구와 분리된 뒤, 1995년 포항에서의 첫 개최에 이은 11년만의 두 번째 개최 체전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또 인구가 15만에 지나지 않는 중소도시인 김천시가 주 개최지로 선정됐고, 14개국 해외동포를 포함해 역대 최대 규모인 3만여 명의 선수·임원단이 참여하는 의미도 있다.
전국체전은 1920년 종목별 대회로 출발해 해방과 한국전쟁 등 일부 격년기를 제외하고는 매년 열려 87회의 연륜만큼이나 긴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최고의 체육축전이다.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60, 70년대의 전국체전은 그야말로 전 국민의 축제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서 TV가 급속도로 보급되고, 프로야구 출범 등 외적 요인으로 열기가 식기 시작해 이제는 '체육인들만의 축제'로 전락해버린 느낌이 없지 않다. 프로스포츠의 대중적인 보급, 다양한 오락거리의 등장과 함께 수준 높은 국제경기, 혹은 외국 프로스포츠가 실시간에 안방으로 전달되면서 국민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하는 연례행사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경우는 간판만 걸면 관중이 꽉 들어찼던 고교야구나 라디오로 세계챔피언전 중계를 들으며 가슴을 졸였던 프로권투 등이 오늘날 쇠퇴하게 된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전국체전에 쏟는 체육계의 노력은 눈물겹다. '국내 엘리트 체육을 책임진다'는 자부심과 함께 경쟁이라는 피할 수 없는 함정 때문이다. '체육보국(體育保國)'을 강조하면서 개막식에 꼭 참석했던 고 박정희 대통령은 배석한 시·도지사에게 지난해 등위를 물어 1~3위를 다퉜던 서울특별시장과 경기도지사, 경북도지사 외에는 감히 근처에 얼씬 거리지도 못하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 대통령의 말이 곧 법이었던 때였고 보니 한 단계라도 등위를 올리기 위해 시장·도지사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수 선수 확보에 열을 올렸고, 덩달아 체육인들의 위상도 높았다는 것이 원로 체육인들의 좋았던 시절에 대한 회고다.
좀 오래된 이야기지만 기자가 체육부에 근무했던 90년대 초의 경우, 대구·경북 체육계 간부들의 일상사는 비인기 종목의 팀 창단이나, 실업팀의 대구·경북 연고팀 만들기 연구였다. 그러다보니 이름도 생소한 실업팀이 어느 날 갑자기 대구·경북 팀 연고로 출전을 하게 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세월이 흘렀지만 이러한 모습이 바뀌지는 않은 것 같다. 체육인들은 빛바랜 영광의 재현과 함께 단 1점이라도 더 따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고, 그 열정아래서 학교 체육을 비롯한 엘리트 스포츠가 명맥을 유지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경쟁이야 피할 수가 없을 터이지만 체전을 좀 더 재미있고, 많은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국민의 축제로 만들었음 싶다. 이번 체전의 경우, 김천이 주 개최 도시지만 경기장 문제로 경북 도내 15개 시·군과 대전, 충북, 경기 등지에 걸쳐 열린다. 감히 제언을 하면, 다른 지역이야 차치하더라도 경북의 경우를 살펴본다면 자치단체장끼리 사전에 머리를 맞대면 전국체전을 전국민의 참여축제로 만들 수 있는 길이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전국체전이 열리는 10월은 경북뿐 아니라 전국의 각 지자체가 중점 추진하고 있는 지역축제가 집중적으로 열리는 시기이다. 이들 축제를 전국체전과 연결시키면 개최지역에 많은 관람객을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축제를 개최하는 지자체 입장에서 보면 홍보가 쉽고, 수만 명의 선수단을 자연스럽게 축제의 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축제을 찾는 이들을 전국체전 관람객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방법 모색도 가능하다. 시기적으로 올해는 늦었지만 앞으로의 전국체전에서는 한번쯤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물론 시행까지는 쉽지가 않겠지만 전국체전이 과거의 영광에서 한 풀 꺾여 있는 것이 아쉽고, '축제는 사람이 북적대야 축제기분이 난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나온 제언이다.
정지화 사회 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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