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가을은 이렇게 풍요롭건만

입력 2006-10-13 07:09:23

추석이 지나고 나니 가을빛이 더욱 완연하다. 하늘이 높아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가을에는 소 발자국에 고인 물도 먹는다.'라는 옛말처럼 아무데나 고여 있는 물도 너무 맑고 깨끗하다. 높고 맑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황금물결로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들판을 걸어보면, 북의 핵실험 문제로 모든 것이 뒤숭숭한 가운데서도 잠시나마 세속을 잊을 수 있어 마음이 여유롭고 넉넉해진다. '가을밭에 가면 가난한 친정 가는 것보다 낫다.'라는 속담이 실감나게 와 닿는다. 먹을 것이 정말로 온 천지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앞이 막막하고 방향을 잡을 수 없을 때는 처음 출발지로 돌아와 근본과 기본을 다시 음미해 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한반도에 전개되고 있는 급박한 상황 변화와 우리 사회를 휘감고 있는 다양한 갈등의 분출을 바라보며, 현대인의 불안과 자유의 의미를 깊이 파고들었던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다시 음미해 본다. 그는 '인간의 역사란 자기 몫을 더 많이 가지기 위해 투쟁하는 소유의 역사'라며 논의를 시작한다.

'소유 지향적 삶(having mode)'은 끝없이 소유를 추구함으로써 무력감과 고독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소유에 대한 욕망을 더욱 크게 하여 결국은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삶의 방식은 피나는 경쟁, 권모술수, 전쟁, 환경파괴, 물질 만능주의, 인간성의 황폐화 같은 것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존재 지향적 삶(being mode)'은 무조건적인 무한성장보다는 필요에 의한 선택적 성장, 물질보다는 정신적 만족, 진정한 배려와 나눔, 섬세한 감수성과 열린 마음, 내면적 깨달음과 기쁨 등을 중시한다고 지적하며 '소유'에서 '존재'로 나아가라고 촉구한다.

두 삶의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프롬이 예로 들고 있는 '갈라진 벽 틈새에 핀 꽃이여/나는 너를 그 틈새에서 뽑아내어/지금 뿌리째로 손안에 들고 있다'라고 한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구와 '눈여겨 살펴보니/울타리 곁에 냉이 꽃이 피어있는 것이 보이누나!'라고 노래한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를 다시 읽어본다. 상대를 뿌리째 뽑아 생명을 파괴해버리는 '소유 지향적 삶'과 하찮은 것일지라도 상대를 관조하며 그것과 일체가 되기를 바라는 '존재 지향적 삶'의 자세를 비교하는 동서양의 두 시를 음미하며 민족의 생존과 공존을 다시 생각해 본다.

밤 깊어 문밖을 나서면 이제 제법 바람이 쌀쌀하다. 시골집 섬돌 밑뿐만 아니라 도시의 아파트 단지 작은 풀숲에서도 온갖 가을벌레들이 계절을 찬미하고 있다. 가을은 인간사에 관계없이 한결같이 태고적 감동과 풍요를 베풀어 주고 있는데, 우리의 마음은 왜 이렇게 심란한가. 조락의 계절 탓만이 아닌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추태귀 상주대 의상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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