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차 한잔] 애호가들 "야생차를 전통방식 그대로 직접 덖죠"

입력 2006-10-12 14: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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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차를 덖어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이들은 매년 5월 초면 함께 전라남도 구례의 지리산 피아골 불락사로 차 덖기 여행을 떠난다. 벌써 20년이 넘었다. 재작년까지는 차 덖을 무쇠 솥과 비비고 말릴 멍석까지 직접 들고 다녔다. 작년부터 불락사 아래에 자리잡은 구멍가게 주인이 솥을 마련해주는 덕분에 이제 무거운 솥을 들고 다니지는 않는다.

◇ 전통방식 그대로 밤새 덖어

이들 모임의 회장 격이자 전통차 덖기를 주도하는 사람은 장명화(전 대구시립 국악단 악장) 씨. 장 씨와 더불어 서예가 권시환 씨, 대구시 감사관 박성환 씨, 경남 언양 경찰서에 근무하는 한상길 씨, 대구시 환경녹지국장 권대용 씨 등 5, 6명이 매년 구례로 떠난다. 대구에서 구례까지 자동차로 꼬박 3시간 20분 거리지만 단 한번 수고로 1년 마실 차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가볍다.

"무쇠 솥 2개에다 전통방식 그대로 하루밤새 덖을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습니다. 점심 식사 후부터 다음 날 새벽 3, 4시까지 덖으면 5, 6명이 1년 마실 차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너무 많으면 곤란해요." 서예가 권시환 씨의 말이다.

이렇게 직접 덖은 차를 다음 날 오전까지 말린 후 집으로 갖고 온다. 그리고 약 1주일 간 숙성시킨 후 포장한다. 함부로 포장하면 1년 동안 보관이 어렵다. 장명화 씨가 회원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포장을 해준다. 물론 포장 장비가 따로 있다.

"차 덖을 땐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면 안됩니다. 특히 화장한 여자는 작업장에 절대 출입해서 안되지요. 부부동반으로 차 덖기에 참여할 경우에는 로션도 바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합니다." 장 씨는 찻잎을 잘 덖고 잘 비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잡 냄새가 스미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 전통 차의 깊은 맛 비길 데 없어

시중에 차 종류가 많을 뿐만 아니라 고급차도 많다. 굳이 이들이 차를 덖어 마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차를 물처럼 마신다. 하루 2되는 족히 마신다고 하니 종일 달고 산다고 해야 옳다. 그렇게 마시자니 많이 필요하고, 일일이 사서 마시기는 부담스럽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맛 때문이다.

"시중에 파는 차는 대부분 재배한 차입니다. 우리가 덖어 마시는 차는 야생차고요. 게다가 판매하는 차는 거의 대부분 전통방식으로 덖은 차가 아니라 찐 차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마솥에 전통방식으로 덖은 차와는 맛의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죠." 장명화 씨는 20여 년 전 큰스님으로부터 전통차 덖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차 덖을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불 조절. 그래서 지금도 불 앞에는 그만 앉는다.

"직접 덖은 차를 7번에서 10번을 우려도 차 맛이 우러납니다. 충분히 우려 마신 다음에는 떡을 해먹거나 목욕물에 풀어 몸을 적십니다. 말려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냄새 제거에도 좋고요." 서예가 권시환 씨의 직접 덖은 전통차 예찬론이다.

5년 전까지 불락사 인근의 야생 찻잎은 ㎏당 3만원 내외였지만 올해엔 생차 가격이 부쩍 올랐다. 1kg에 4만 5천원선. 생찻잎 1㎏을 덖고 비비면 200g 정도의 전통차가 나온다. 이 정도 품질을 시중에서 사려면 10만 원이 넘게 든다고 했다.

"한 10년 야생차를 직접 덖어 마셨더니 시중에 파는 차는 못 마시겠어요. 맛이 달라요." 서예가 권 씨는 장거리 여행에 밤새 차를 덖고 비비려니 불편하지만 그 깊은 맛을 떨칠 수 없다고 했다. (2006년 10월 12일자 라이프매일)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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