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차 한잔] 다도…입속에 머금어 굴리듯이 마시도록

입력 2006-10-12 14:51:58

"옛날부터 성현들은 모두 차를 즐겼나니/차는 군자처럼 성미에 사악함이 없어서라네."

조선후기의 대표적 선승(禪僧)이면서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의 다시(茶詩)의 한 구절이다.

다도(茶道)는 참 어렵게 느껴진다. 차를 끓이는 전다법(煎茶法)에서부터 차를 접대하는 공다법(供茶法)에 이르기까지 갖춰야할 격식과 예절이 있다. 차를 정통하게 배우려는 사람들은 다도회에서 몇 개월에서 몇 년씩 다도를 수련해야 할 정도이다. 하지만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겠다. 예법이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듯 다도 역시 옛것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대부분 다도인들의 생각이다.

정복희 로전예다원 원장은 "차 예법은 좌식생활을 하던 시절에 마련된 것으로 입식생활을 하는 요즘에 반드시 이를 원칙 그대로 지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며 "하지만 차를 마실 때 겸손한 마음을 갖고,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를 갖추는 등의 정신만은 지켜가야 한다."고 했다.

◆다도란?

다도는 차의 성품에 따르는 것이다. 중국 송나라 시절 소식은 "차의 청정무구한 힘은 덕망 있는 군자와 같아서 더럽힐 수가 없다."고 했다. 다도는 물, 불, 바람, 차, 다구 등을 매개로 해서 차의 천성을 따라서 덕을 쌓는 수도 행위이다. 즉 다도는 차 생활을 통해서 얻어지는 깨달음의 경지이다. 단순히 예절이나 법도, 차를 끓이는 행다법(行茶法)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차의 역사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신라 흥덕왕 3년(828년) 당나라에 사신을 갔던 김대렴이 중국의 강문중에게 씨앗을 얻어와 지리산에 심은 것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차이다. 중국에 가서 차를 마시고 배워온 최초의 사람은 원광법사이며, 의상대사, 원효대사 등이 차 호사가였다. 불교문화 속에서 싹튼 음다풍(飮茶風)은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쇠퇴해 가고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정책으로 인해 차 문화가 점점 사라져갔다. 조선시대에 초의선사, 김정희, 정약용 등이 차 문화 중흥에 힘써 명맥을 이었지만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차 문화는 다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후 88 올림픽 등을 맞아서 '우리 것 되찾기' 운동의 하나로 차 문화가 다시 살아났다.

◆차 우려내는 방법

물 끓이기→다관(차를 우려내는 주전자)과 찻잔 헹구기→끓인 물 식히기→다관에 차 넣기→끓인 물 붓기→찻잔 비우기→1분 정도 우러난 차를 귓대에 따르기→찻물을 각 잔에 따르기→재탕, 삼탕 마시기

◆차 마시는 예의

명주(茗主:주인)는 차를 손님 앞에 놓고 목례를 하거나 "차 드십시오."라고 한 뒤 함께 마신다. 차를 마실 때는 차싹, 차를 끓여준 사람, 짬을 낸 자신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두 세 번 나누어 마시되, 입 속에 머금어 굴리듯이 차가 입안에 고루 배이게 마신다. 이렇게 하면 찻속에 있는 탄닌의 살균작용과 불소성분으로 인해 치아에 좋고 맛을 오래 느낄 수 있다. 잔 받침은 그대로 놓아두고, 오른손으로 잔을 잡아들면서 왼손을 잔에 붙이거나 받친다. 차를 마실 때는 소리가 나지 않아야 한다. 다 마신 뒤에는 찻잔에 남은 향기를 맡고, 잔을 내려놓는다. 차는 오감(五感)으로 마신다고 한다. 귀로는 찻물 끓는 소리, 코로는 향기, 눈으로는 다구와 차, 입으로는 맛, 손으로는 찻잔의 감촉을 즐긴다. (2006년 10월 12일자 라이프매일)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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