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논술 시대의 글 도둑

입력 2006-10-10 07:21:39

글짓기 심사를 할 때가 더러 있다. 그 때마다 참으로 진땀을 뺀다. 출품된 글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기 때문이 아니다. 마땅히 시상할만한 작품이 없기 때문도 아니다. 안타깝게도 다른 사람 글의 일부 또는 전부 가져 온 것을 가려내기 어려워서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쓰면 좋은 글이 된다. 알맹이 없이 예쁘게만 포장된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은 남의 글을 자기 글인 양 버젓이 내놓는 사람이 많다. 죄의식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다. 백일장에서 장원으로 당선된 뒤 표절 사실이 밝혀져 수상이 취소되는 경우까지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회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하다. 특히, 가정이나 학교에서 쓴 작품을 모은 경우 대부분 표절, 대리작일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에서 따온 글은 다반사다. 부모가 가필을 해 주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지도교사가 손을 봐 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표절 작품을 찾아내는 것이 심사 위원들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 버렸다. 수준이 조금 나아 보이는 작품을 찾으면 걱정부터 앞선다. 인터넷에서 유사한 작품이 없는지를 찾아봐가며 심사해야 할 지경이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이렇게 된 까닭은 어릴 때부터 생각을 드러낼 수 없도록 가르쳤기 때문이다. '받아쓰기'로 생각을 드러내기보다 글자 안 틀리고 쓰기에 관심을 갖도록 하였다. 반공, 통일, 에너지 절약, 효행, 환경 보존 등 뻔한 내용밖에 떠오르지 않는 글쓰기를 과제로 제시하거나 수행평가에 반영하는 등의 방법으로 강요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글 쓰는 것은 귀찮은 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논술 시대'가 되어 버렸다. 2008학년도에 60개 대학에서 논술고사를 치르기로 함에 따라 귀찮아서 멀리하던 글쓰기를 이젠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또, 그만큼 글쓰기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논술'은 자신의 생각을 그냥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사를 별 체계 없는 글로 표현하기도 어려운데, 주제를 주고 그와 관련한 내용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라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늘 남의 글에 의지해 왔으니 더욱 힘들고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학생들이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이지 않고도 '논술'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잘 드러내도록 지도하면 가능할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 생각을 쓸 수 있도록 지도하면 충분하다.

이제부터는 표현이 다소 거칠더라도 자신만의 생각이 담긴 글을 쓰도록 도와주자. 남의 글을 훔치는 것은 도둑질일 뿐 아니라, 논술 시대에 역행한다는 점도 가르쳐 주자.

박정곤(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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