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모(32·대구 달서구 상인동) 씨는 올 추석, 큰 집 동서와 명절 음식을 나눠 준비했다. 이른바 '포트럭(Potluck:서양에서 파티를 할 때 참석자들이 음식을 각자 조금씩 갖고 와 나눠먹는 것)' 방식을 적용한 것. 김 씨의 아랫 동서도 음식을 해 왔다. 큰 형님의 명절 일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시도에서다.
"최근 가족회의를 열어 딸·아들 구별없이 모두 차례때 절을 하고, 며느리들도 부엌에서 벗어나 가족들과 모두 모여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회의를 열었을 때 물론 어른들이 나무랐죠. 그렇지만 결국 이해해 주시더군요. 이번 추석엔 정말 분위기가 좋습니다." 김 씨는 이번 추석은 스트레스 없는 명절이라고 자랑했다.
여성들에게만 부엌일이 쏟아지는 '남성 중심적 명절문화'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변호사 박모(35·여·대구 수성구 범어동) 씨는 명절 당일 시댁과 친정을 번갈아 가며 친지를 찾아 뵙는다. 설날 시댁을 방문한 뒤 친정에 갔다면, 추석엔 친정에 먼저 가는 식. 친정에는 딸만 셋이고 시댁에는 아들이 여럿인 탓에 남편이 친정의 차례에 참석,아들 노릇을 할 수 있도록 양쪽 집안에서 양해가 이뤄졌기 때문.
그는 "딸이라고 무조건 명절 당일을 시댁에서만 보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 시부모님을 설득시켰다."며 "부부가 서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행복한 명절이 될 수 있다."며 "이제는 남편도 이런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전했다.
20·30대 신세대 부부처럼 '파격'은 아니지만 40·50대 주부들도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결혼 30년 차인 정모(53·대구 남구 대명동) 씨는 올해 제사음식과 명절음식 양을 반으로 줄였다. 이틀에 걸쳐 겨우 해낼 만큼 많았던 음식량을 확 줄였다. 예전엔 추석 당일 시댁만 갔지만, 올해는 추석날 오전엔 시댁, 오후엔 친정을 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수십년 동안 명절되기 3일 전부터 몸이 맞은 것처럼 아팠어요. 일할 걱정에 지레 겁먹은 탓이죠.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부부 어느 한쪽이 희생하는 명절문화는 오히려 가정의 행복을 해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처음엔 완강히 거부했지만 결국 제 손을 들어줬습니다." 정 씨는 금슬이 더 좋아졌다고 했다.
이와 관련, 올 상반기 법원에 협의이혼을 신청한 건수가 명절을 전후해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가정법원이 올 1월부터 7월까지 협의이혼율을 조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설 명절 전후로 가족간의 불화로 이혼한 부부들이 급증했다는 것.
설 전후인 1월과 2월 '시댁과 처가의 갈등'으로 이혼한 건수가 152건으로 전체 282건 가운데 53%를 차지했다. 명절 이후인 3월부터는 협의 이혼 건수가 크게 줄어 7월에는 12건으로 가장 낮은 이혼건수를 보였다.
대구 여성의 전화 이두옥 대표는 "평소에는 가정 불화가 표출되지 못하고 억압돼 있다 명절 때 불합리한 부분을 또다시 경험하면서 이혼을 결정하는 부부들이 많다."면서 "특히 명절이 부부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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