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부들은 추석이 피곤하다죠? 그런데 저희는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추석이 너무나 기다려져요."
러시아에서 대구로 시집온 무지첸코 따띠야나(Muzichenko Tatiyana·24·대구 남구 대명동) 씨. 그는 일가 친척이 모두 모이는 추석이 마냥 신난다고 했다. 온가족이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드는 재미뿐 아니라 가족간의 유대와 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 특히 친지들이 모여 명절을 함께 보낸다는 것은 러시아에서는 찾기 힘든 문화.
지난 2000년 태권도 사범으로 러시아에 온 남편과 결혼, 2004년 4월 대구 땅을 밟은 따띠야나 씨. 아직은 한국이 낯설단다. 뼛속까지 스며든 제 나라 풍습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가 쉽지 않은 탓. "추석은 저희 같은 외국인 주부들에겐 고마운 기간입니다."
수많은 한국의 주부들이 과도한 일거리로 명절 후유증까지 겪는 마당이지만 따띠야나 씨 같은 외국인 주부들에겐 명절이 더없이 고마운 때. 피붙이 하나 없는 이국 땅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모일 수 있는 유일한 기간.
하지만 그도 2004년 처음 추석을 맞았을 때는 정말 힘들었다. 낯선 문화인 데다 어색한 절차들이 즐비했기 때문.
"지난 2년 동안 추석은 제게 이해 못할 것들투성이였어요. 유교문화라는 걸 전혀 몰랐으니까요."
여러가지 음식을 만드는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성묘절차에 이내 혀를 내둘렀다. 가파르고, 풀도 무성한 산길을 오르는 것은 '정글탐험'이었다. 산 곳곳에 솟은 작은 봉분들이 모두 무덤이라는 말에는 소름이 돋았다. 조상들 산소에 가서 절하고 제사도 지내고, 또 돌아가신 분들께 절을 한다는 것이 께름칙하기도 했다.
"추석이 뭔지조차 몰랐어요. 러시아엔 가을명절이 없기도 하거니와 추석과 비슷한 명절은 '추수감사절'이 고작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그녀에게 추석은 반드시 있어야 할 명절이다. 추석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한국문화를 모두 맛볼 수 있는 기간이기 때문.
"일거리가 평소보다 많긴 하지만 일을 나눠서 조금씩 하는 재미가 쏠쏠해요." 추석 때 시부모님과 남편 형제들, 조카들까지 합치면 15명이 모인다. 그는 추석 차례상 준비를 통해 한국 요리도 많이 배운다.
"아직 '잡채' 같은 고난도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어깨 너머로 많이 배운답니다." 한국에서 맞는 세 번째 추석. 그는 추석빔도 마련했다.
"친척들이 모두 모이면 고향 러시아 생각도 잊을 수 있어 좋아요. 저희처럼 외국에서 온 주부들에게 명절은 더없이 고마운 때랍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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