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耳順)의 나이는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그것도 몸으로 살아낸 사람이라면 세월의 흔적이 몸 안에 고스란히 남는 법. '몸이 악기'인 춤꾼이 40년동안 그 악기를 혹사시켰으니, 이젠 무릎이며 허리며 닳고 달았다. 하지만 그 시간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현대무용가 구본숙(60·영남대 무용학 교수)씨는 자신의 60년 인생을 정리하기 위해 책 발간을 준비 중이다. 무용계에선 흔치 않은 자서전격의 책이니 그에겐 특별한 환갑인 셈이다.
"초등학생 때 선교사를 따라 추수감사절 예배에 나갔어요. 그때 교회에서 검정 치마에 연두 저고리를 입고 공연을 했죠. 그게 춤과의 첫 만남이예요."
몸짓에 대한 기억이 강렬해서일까. 그는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춤에 매진했다. 대학까지 마치고 돌아오니, 지역 무용계에서 현대무용 정식 교육과정을 마친 1세대 무용가가 돼 있었다.
"그때는 볼 거리가 없어 공연을 했다 하면 지금의 시민회관이 차고 넘쳤어요. 고등학생이던 내가 싸인까지 했을 정도니, 지금의 연예인 부럽지 않았죠."
무용 공연에서 순수 관객을 찾기 힘든 현실에서 구씨는 오히려 '옛날이 좋았다'고 했다. 그가 가장 에너지를 쏟으며 활동했던 시기는 대구시립무용단에서 보냈던 때이다. 1988년부터 2000년까지 무용단을 이끌었으니, 시립무용단 역사의 절반을 함께 한 셈이다. "이제 60 고개에서 돌아보니, 그때는 배가르는 수술을 하고도 복대로 배를 칭칭 동여맨 채 무대에서 뛰었어요. 내가 어째 그랬는지 몰라.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아."라며 혼잣말을 한다.
구씨는 한국적인 정서와 서양의 정서를 현대무용 안에서 묘하게 결합시킨다. 이는 학창시절 배웠던 한국무용 가락이 몸에 녹아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정체성'에 대한 구씨 나름의 결론이기도 하다.
그는 요즘 무용공연이 마뜩찮다. "퓨전도 좋지만, 잡다하게 늘어놓는게 퓨전이 아니잖아요. 별 관계없는 영상을 공연 내내 틀어대고... " 구씨는 대중지향적인 무대도 경계했다. '무용이 대중과 만나야 하되 순수예술의 선을 지키는 선에서 상업화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요즘 책의 마지막 교정을 보고 있는 구씨는 책 '구본숙의 삶과 춤'에 그의 춤 인생과 더불어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공연사진도 실었다. 개인사 뿐만 아니라 현대 무용의 역사도 담겨있는 것. 11월 13일 갖는 정기공연 후에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가질 예정이다.
"나이 든 무용수가 보여줄 수 있는 몸짓이 있지 않을까요. 젊은 무용수가 고도의 테크닉을 보여줄 수 있다면 60이 넘은 무용수는 작은 몸짓 하나에도 느낌이 다를 겁니다. 예술은 연륜이 말하니까요. 무대에 서는게 어색하지 않을 때까지 그 몸짓을 보여드릴 거예요."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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