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한가위] 제사상의 모든 것

입력 2006-09-28 14:29:13

제사를 지내는 데는 복잡한 절차가 따른다.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는 "정성만 있으면 되지, 절차가 무슨 상관이냐?"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이런 예법에도 다 이유가 있는 법. 우리 조상들은 삶의 지혜와 믿음 등이 담겨있는 것이다. 진귀한 음식은 형편이 여의치 않아도 꼭 제삿상에 올려 조상에 대한 예를 갖추려 노력했고, 귀신을 쫓거나 부정한 미신이 깃든 음식들은 절대 제사상에 올려놓지 않았다. 제사상에 얽힌 '비밀'을 풀어봤다.

◆제삿상 진설(陳設·제사나 잔치 때, 음식을 법식에 따라 상 위에 차려 놓음)

제삿상에 올리는 음식의 종류와 놓는 순서는 지역마다, 가문마다 조금씩 다르다. 경상도 지방의 특색은 돔배기(토막 상어고기)를 쓴다는 것. 타지방에서는 김치나 식혜를 쓰기도 하지만 경상도에서는 일부 지역이나 가문에서만 사용하며, 국수 역시 상에 올리는 경우가 드물다.

음식을 놓을 때는 조율이시(棗栗梨枾'왼쪽부터 대추, 밤, 배, 감의 순서로 진설. 조율시이로 놓기도 한다), 좌반우갱(左飯右羹·제삿밥은 왼쪽, 국은 오른쪽),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 생동숙서(生東熟西·생 것은 동쪽, 익힌 것은 서쪽), 좌포우혜(左脯右醯'포는 왼쪽, 식혜·젓갈류는 오른쪽), 어동육서(魚東肉西·생선은 동쪽, 육류는 서쪽), 두동미서(頭東尾西·생선의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 건좌습우(乾左濕右·마른 것은 왼쪽, 젖은 것은 오른쪽), 접동잔서(接東盞西'접시는 동쪽, 잔은 서쪽)에 따른다.

△조율이시(棗栗梨枾)

제삿상에 빠져서는 안될 과일이 바로 조율이시. 바로 대추, 밤, 배, 감이다. 서석목 대구향교 의전국장은 "아무리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많은 음식을 잘 차려 놓아도 삼실과(三實果·대추, 밤, 감)가 빠지면 모두 무효가 된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조상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제수품"이라고 했다.

조율이시를 제삿상에 올리는 것에는 조상의 가르침이 배어 있다. 대추는 꽃이 되면 절대로 그냥 떨어지는 법이 없다고 한다. 아무리 비바람이 치고 폭풍이 불어도 반드시 열매 하나를 맺고서야 떨어진다. 이것은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반드시 자식을 낳고 가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또한, 대추씨는 통씨여서 곧 절개를 뜻하며 순수한 혈통을 의미하기도 한다.

밤은 나와 조상의 영원한 연결을 상징한다. 모든 식물은 싹이 나서 뿌리를 내리면 씨앗이 썩어 없어지지만, 밤은 뿌리를 내리고 성숙한 나무가 되어도 최초의 씨밤이 절대 썩지 않고 생밤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배를 쓰는 이유는 겉보다 안을 보라는 뜻이다.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내실이 꽉 차 있는 됨됨이를 잘 살피라는 가르침이 서려있다. 또한 배는 껍질이 누렇기 때문에 황인종을 뜻한다는 설도 있으며, 오행에서 황색은 우주의 중심을 나타내고 있고 배의 속살이 하얀 것은 우리 백의민족에 빗대어 순수함과 밝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제수에 올렸다는 풀이도 있다.

감은 씨를 그냥 심기만 해서 열매가 열리지 않고, 반드시 접을 붙여야 수확할 수 있다. 접을 붙인다는 것은 결혼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고, 생가지를 칼로 찢어서 접붙일 때처럼 아픔이 따르는 선인의 가르침을 배워야만 비로소 하나의 인격체가 될 수 있다는 '배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최고로 귀한 것만

조기는 예로부터 생선의 으뜸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제삿상에는 빠지지 않고 오른다. 명태(북어포)는 동해의 대표적인 어물이자 머리도 크고 알이 많아 훌륭한 아들을 많이 두고 알과 같이 부자가 되게 해 달라는 유래가 깃들어 있다.

제삿상에 과일을 위쪽만 깎아 올리는 것인 귀신들이 촉식(觸食)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느낌만으로 배가 부를 수 있다는 것으로, 조금만 깎아서 과일의 속살과 접촉할 수 있게 해주면 귀신이 음식을 맛볼 수 있다고.

요즘은 갖가지 다양한 과실주나 전통주에서부터 심지어 와인을 사용하는 가정도 있지만 제사에 주로 사용되는 술은 '청주(淸酒)'였다. 동동주에서 위의 맑은 술만 걸러서 떠 낸 고급술로 옛날에는 청주만 따로 보관해 뒀다가 조상들에게 대접하기 위해 제삿상에 올린 것이다.

또한 바나나, 오렌지, 키위, 망고 등 국내에서 재배되지 않는 과일을 제삿상에 올리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제한이나 금기가 없다. 오히려 조선 시대에는 이런 과일이 귀해 임금이나 가까운 신하들만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서석목 국장은 "제삿상 예법을 까다롭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조상을 생각하는 정성을 담아 차리면 되는 것"이라며 "제삿상에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 하더라도 평소 고인이 즐겨 먹던 음식이나, 옛날에는 맛볼수 없었던 진귀한 과일 등을 쓰는 것도 괜찮다."고 설명했다.

◆제삿상의 금기

형편이 닿는대로 정성껏 장만하고 평소 고인이 즐겨먹던 음식까지 세세하게 챙기면 되겠지만 제삿상에서 꼭 피해야 할 음식들이 있다. 예로부터 제삿상에는 절대 오를수 없다고 금기시되는 음식들에는 나름대로 얽힌 사연들이 있다.

△귀신을 물리치는 음식은 노(NO)!

복숭아는 제삿상에 올릴 수 없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손꼽힌다. 옛 사람들은 복숭아가 요사스런 기운을 몰아내고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제삿상에는 복숭아를 올리지 않고 집 안에 조차 복숭아 나무 심기를 꺼렸다. 복숭아를 두면 제사 때 조상의 혼이 찾아 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붉은 색이 들어간 음식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고춧가루나 붉은팥 등은 귀신을 쫓아내는 역할을 한다고 믿어졌기 때문. 그래서 제삿상에 올리는 음식에는 고춧가루 양념을 하지 않고, 떡 역시 흰 고물만을 사용해왔다. 일부지방에서는 김치를 제삿상에 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 때도 고추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백김치를 사용한다.

△생선도 가려서 사용해야

제삿상에는 '치'자로 끝나는 생선을 사용하지 못한다. 멸치, 갈치, 꽁치, 준치, 넙치 등 '치'자로 끝나는 생선은 하급어종으로 분류돼 조상님에게 최상의 음식을 대접한다는 예법에 어긋나기 때문.

따라서 제삿상에 사용되는 생선은 '어'나 '기'자로 끝나는 고급어종만을 사용한다. 비늘이 없는 고등어나 삼치, 뱀장어, 메기 등 역시 제삿상에 올려서는 안된다. 비늘이 없는 생선은 예로부터 부정한 생선으로 구분을 했기 때문이다. 잉어를 제삿상에 사용하지 않는 것은 조금 다른 이유다. 잉어는 예로부터 성스러운 영물로 숭앙되기 때문에 제삿상에 올리지 않는다고 한다.

◆제사 절차

△강신(降神)-조상님 영혼이 찾아오기를 청하는 의식이다. 제주(祭主)가 신위 앞으로 나아가 향을 올리고 잔에 술을 조금 따라 두 손으로 향불 위에서 세번 돌린 다음 모사(혹은 퇴주그릇)에 조금씩 세 번 붓고 두번 절한다.

△참신(參神)-신위(神位)에 인사하는 절차. 참사자들은 두 번 절한다. 여자는 네 번 절한다.

△초헌(初獻)-제주가 첫번째 잔을 올리는 것.

△독축(讀祝)-초헌 이후 모든 참사자가 꿇어 앉으면 축관이 제주의 왼쪽에서 축문을 읽는다. 축을 다 읽으면 참사자는 조용히 일어서고 제주는 두 번 절한 후 제자리로 간다.

△아헌(亞獻)-두번째 잔을 올리는 의식으로 원래는 주부(맏며느리)가 올린. 주부가 아니면 다음 가는 근친자가 올리고 두번 절하고 여자는 네번 절한다.

△종헌(終獻) -마지막 잔을 올리는 의식이다. 손님(賓)이나 아헌자의 다음가는 근친자가 잔을 올리는데 잔을 7부쯤 부어서 올린다.

△첨작(添酌) -제주가 다시 신위 앞으로 나아가 술잔에 술을 세번 나누어 따라 술잔을 가득 채운다.

△계반삽시(啓飯揷匙)-숟가락을 메그릇 가운데에 꽂는다. 이 때는 숟가락 바닥이 동쪽으로 가도록 한다.

△합문(闔門)-조상님이 마음 놓고 잡수시도록 자리를 비우는 것이다. 참사자 모두가 뜰아래로 내려오거나 마루에서 조용히 구식경(아홉 숟가락 정도 잡수실 시간)을 기다린다. 집의 구조에 따라 제자리에서 엎드려 기다리기도 한다.

△계문(啓門)-축관이 헛기침을 세번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참사자도 모두 제자리에 들어가 선다.

△헌다(獻茶)-갱을 내리고 숭늉을 올려 메를 세 숟가락 떠 물에 말아 숟가락의 술총이 서쪽으로 가게 놓는다. 그 뒤 참사자는 머리를 숙이고 2, 3분 기다렸다 축관이 세번 헛기침을 하면 바로선다.

△철시복반(撤匙復飯)-숭늉그릇에 놓인 수저를 거두고 메그릇의 뚜껑을 덮는다.

△사신(辭神)-고인의 영혼을 전송하는 절차로 참사자가 신위 앞에 두 번 절한다.

△분축(焚祝)-지방과 축문을 불사른다.

△철상(撤床)-퇴잔을 하여 제주에게 주면 제주가 꿇어않아 음복한 후 제수를 물리는데 뒤에서(신위 앞쪽)부터 물린다.

△음복(飮福)-음복이란 조상님이 주신 복된 음식이다. 모두 한 자리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눠 먹으며 조상의 음덕을 기린다.

도움말·서석목 대구향교 의례국장 (2006년 9월 28일자 라이프매일)

한윤조 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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