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온통 붉은 빛…고창 선운사 꽃무릇 여행

입력 2006-09-27 07:19:54

가을의 색깔은 붉다. 봄의 진달래나 철쭉처럼. 이 붉은 색은 9월 중순부터 남도의 산사(山寺) 앞 계곡에서부터 시작된다.

붉은 가을을 알리는 상사화가 피었다. 피었다기보다 화르르 붉은 기운이 온 계곡을 휘감았다. 대표적인 곳은 전남 함평의 용천사와 영광 불갑사. 전북 고창의 선운사에도 꽃무릇이 많다. 선운사는 고창 학원농장의 메밀꽃밭과 가까워 두 곳을 함께 돌아보기에 좋은 곳이다. 그 꽃무릇을 만나러 선운사로 달렸다. 행여 너무 늦지나 않았을까 조바심이 나던 터였다.

선운사 주차장이 가까워지자 계곡주위가 온통 붉다. 도로를 따라 차가 모퉁이를 돌 때마다 탄성을 내지르게 만든다. 5월 석가탄신일 길가의 연등처럼 자홍빛으로 길 가를 물들였다.

주차장에서부터 개울을 따라 선운사를 지나 도솔암까지 꽃무릇이 한창이다. 9월 넷째주인데도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 시든 꽃이 없고 아직 꽃잎을 틔우려는 것들도 많아 추석 전인 10월 초에도 이들의 화려한 잔치는 계속될 듯하다.

주차장에서 선운사매표소에 이르는 길 가엔 유독 복분자 가판대가 많다. 하긴 고창의 3대 특산물이 풍천장어와 복분자, 작설차 임을 알고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열매 째 팔기도 하고 복분자 주스, 복분자 액기스, 복분자 찐빵까지 먹음직하다.

이들 가판대 너머 개울가가 온통 붉다. 군데군데 징검다리를 놓아 개울을 건너도록 해뒀다. 조심조심 징검다리를 건너면 꽃무릇 천지에 들어갈 수 있다. 가까이서 보는 꽃무릇은 여느 다른 들꽃보다 화려하다. 화려하다기보다 오히려 선정적이다. 큰 나무 아래 그늘에서 어떻게 이런 화려함을 뽐낼 수 있을까.

시간이 촉박하다면 이곳은 지나쳐도 상관없다. 안쪽으로 들수록 더 나은 꽃 풍경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매표소 뒤쪽에도 대단하다 싶을 만큼 꽃무릇을 심어뒀다.

주차장에서 20여분 걸을 동안 꽃에 취했나 보다. 이곳에 선운사라는 이름난 사찰이 있음을 잊어버렸다. 하긴 꽃무릇만 볼 참이라면 굳이 절 안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다. 선운사는 내려오는 길에 들르기로 하고 내친 김에 도솔암까지 직행했다.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는 3.2㎞. 꽃무릇 사진도 찍고 감상도 하며 천천히 걸으면 2시간가량 걸린다. 가벼운 산행으로도 제격.

이 길은 넓은 도로 대신 개울 건너편 탐방로를 따라가는 게 낫다. 꽃무릇과 가까이서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에 딱 맞다. 선운사에서 7~8분 걸으면 매점이 나타난다. 매점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200여m 더 오르면 꽃무릇 천지다. 꽃무릇이 가장 많은 곳이다. 이때까지 개울을 따라 꽃무릇이 띄엄띄엄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면 이곳은 나무 아래 붉은 양탄자를 깐 듯하다. 꽃무릇이 시원스럽게 꽃대를 세우고 고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굳이 출입금지를 알리지 않더라도 발 디딜 틈이 없다. 무릎높이 위로 온통 꽃 천지다.

아기자기한 개울 옆 산자락을 뒤덮고 있는 꽃송이들. 햇빛이라도 들면 색깔은 더 선정적이 된다. 그늘에 있는 꽃무릇은 은은하게 아름답고 햇빛에 든 꽃무릇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짙푸른 숲 그늘에서 피었다가 행여 하늘이라도 열려 푸른 가을 하늘 아래라면 더 눈길을 끌 만큼 곱다.

박운석기자 dolbb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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