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서는 흔히 나쁜 기억이 좋은 기억보다 오래간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 1929년의 대공황, 2차 세계대전, 블랙 먼데이, 외환위기 등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것은 썩 행복했던 기억이 아닌 것 같다. 좋은 기억들, 1988년 서울올림픽, 1995년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돌파, 60년대 이후 외환위기 이전까지 연평균 경제성장률 8% 등 좋은 기억들이 있을 법한데도 남아 있지 못하다. 최근 세계경제 전망을 내 놓은 IMF 마저도 내년도 미국 경제성장률을 2.9%로 전망하는 등 2007년 세계경제에 대한 어두운 전망이 대부분이다.
미래에 대해 항상 궁금증을 가지고 사는 우리들은 미래의 불안에 대해 미리 알고 대비하려 한다. 그래서 새해 들어 토정비결을 보기도하고 점집도 찾는다. 예상되는 위험을 회피하는 기술이나 방법을 나타내는 용어에 헤징(hedging)이 있다. '내일 비가 올 것이다'라는 기상예측이 있거나, '개구리가 많이 운다'거나, 아니면 '비가 오기 전에는 항상 몸이 쑤신다'는 체험을 바탕으로 그 가능성을 믿으면, 우산을 가지고 외출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헤징'을 잘하면, 소위 '닥쳐 올 수 있는 위험'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미래란 '미래의 불확실한 손실(loss)'을 말한다. 시장을 잘 살펴보면, 미래 발생 가능한 손실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 즉, 경험적으로 시장 상인들이 매출이 일정기간 지속적으로 줄기 시작한다면, 경기에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보는 것과 같다. 시장은 곧 눈이나 비가 올 것으로 정보를 주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얇은 옷을 입고 나가는 것일까? 그것은 '오늘은 따뜻하겠지'라는 '희망' 때문이다. '희망'은 일종의 인센티브 즉 '동기'로 볼 수도 있지만, '투기적 성향'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라는 말이 있다. '설마' 했다가 사람을 잡았으니, 당연히 기억에 오래 남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대박'을 꿈꾸다가 '쪽박'을 차는 이치와 같다.
1989년부터는 '글라스노스트', '페레스트로이카'로 불리는 소련의 개방, 개혁정책으로 1917년 볼세비키 혁명 이후 지속되어 오던 냉전 종식이 가속화되었다. 외환위기 이전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나타났다가 외환위기로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일본이 제 1차 플라자 합의를 해주면서 부동산 버블붕괴로 '잃어버린 10년'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2년 전에 이미 일본경제는 하강 국면이었다는 뜻이다. 멕시코가 OECD에 1994년 가입하고 1년 만인1995년 외환위기를 겪었고, 한국도 1996년 OECD에 가입하고 1년 조금 넘은 시점에서 외환위기를 경험했다. 9·11만 해도 그렇다. 알 카에다의 테러정보를 미국 정부는 정확한 날짜와 방법은 몰랐어도, '테러'가 있을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유가가 배럴 당 30달러를 넘기 시작한 게 2003년 1월부터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있기 불과 2개월 전부터다. 이 정도 나열하다 보면, 무언가 잡히는 게 있다. 무엇이든 미명에서 새벽이 오듯 시나브로 오는 법은 없다.
시장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헤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반드시 준다. 적시적기에 헤징을 하기위해서는 첫째, 시장신호를 믿어야 하고, 둘째, 시장만큼이나 시장 참여자들도 '단순(simple)' 해야 한다. '단순'해야 한다는 의미는 위험을 피하기로 했으면 어느 한 순간에도 '희망'을 거는 투기적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미 세계경제는 '헤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관제탑에 '비상착륙 허가'를 받은 비행기 한대가 착륙을 시도하고 있지만 균형 잡기가 쉽지는 않은 듯하다. 금리를 올려서 인플레이션도 잡고, 주택경기 버블도 잡는 듯 보이지만, 경제성장률 대비 6.5%의 경상수지 적자규모도 난제다. 한국경제는 하루 빨리 '헤징'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환율 변화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하고, 수출경제도 재점검을 하고, 미분양 아파트가 즐비하다는 지방경제도 방치하면 안 될 것 같다. 국민들에 대한 조기 경보체제도 강화해야한다. '헤징'을 할 경우 얻는 이익은 '투기'보다는 훨씬 작을지 모르지만, 피할 수 있는 '손실'의 규모는 '투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곽수종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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