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태풍의 영향으로 간간이 비가 내리는 잔뜩 흐린 날씨 속에 찾아간 경산에 위치한 삼일방직.
기자가 회장실 문을 두드렸을 때 노희찬 전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은 독서에 여념이 없었다. 노 회장이 입고 있는 회사 유니폼이 낯설었지만 썩 잘 어울려 보였다. 정장 차림으로 각종 공식행사에 참석하던 모습만 봐왔던 기자에게 그의 유니폼은 신선해 보였다.
"대구상의 회장 재임 때와 비교하면 독서도 할 만큼 여유가 생겼습니다. 요즘엔 '부의 미래'라는 경제·경영서를 읽고 있습니다. 매일 이렇게 공장으로 출근하는 것이 너무 기분좋습니다."
노 회장은 이날로 대구상의 회장을 퇴임한 지 6개월이 지났다. 그는 지난 2001년부터 5년 3개월 동안 지역 최대 경제단체인 대구상의 '수장'을 하면서 지역 경제계의 화합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5년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보니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재임 기간 동안 봉사한다는 각오로 열심히 일했는데 어떤 평가를 해줄지는 모르겠습니다. 퇴임 뒤 언론의 인터뷰 요청도 거절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소홀했던 본업에 충실하고 싶었습니다."
노 회장은 매일 오전 8시 30분 회사로 출근,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하고 오후 6시쯤 퇴근한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직원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대구상의 회장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직원들도 회장이 매일 출근하니까 적응을 못하던 눈치더군요. 이제 본업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너무 가볍습니다."
대구상의 회장 재임시 온갖 행사를 쫓아다니느라 회사로 출근하지 않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퇴임 뒤 한동안 대구상의 회장 때보다 더 바빴다고 한다.
"대구상의 회장으로서 공식일정에 참석하느라 동창회, 섬유업계 모임에 전혀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미안하다며 밥을 사느라고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대구상의 회장 퇴임 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저녁을 집에서 먹는 일도 많아졌다. "집사람이 적응을 잘 하지 못하더군요. 대구상의 회장 재임 때는 항상 저녁을 밖에서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집사람이 저녁 차려 주느라 귀찮다고 구박을 하더면서도 내심 좋아하더군요."
요즘 노 회장은 저녁을 먹은 뒤에 꼭 부인과 함께 집 근처 소공원을 30~40분 정도 산책한다. 상의 회장 때는 꿈도 못 꿨던 일이다. 집 근처에 이런 멋진 산책로가 있었는지 새삼 알게 됐다고 한다. 산책하면서 부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오면 잠도 잘 온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그의 두 아들은 현재 경영수업에 한창이다. "섬유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은 있습니다. 두 아들이 나중에 삼일방직을 더 탄탄하고 큰 회사로 만들어주기를 바라면서 경영수업을 열심히 시키고 있습니다."
노 회장이 직접 공장으로 안내했다. 조경이 잘 된 2만여 평 규모의 공장에서는 천연펄프를 원료로 원사를 생산하고 있다. 공장 안에는 쉴새없이 수많은 직기가 굉음을 내면서 돌아가고 있었다. 공장에서 생산된 원사는 대부분 수출되고 있다. 그러나 웬일인지 현장 종업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삼일방직은 지난 86년 1천400명이었던 종업원 수가 현재 290명으로 줄었지만 오히려 매출액은 같은 기간 280억 원에서 550억 원으로 두 배 증가했다. 노 회장이 기계설비 자동화 설비 투자에 '올인', 대부분의 라인이 자동화됐기 때문이다. 자동화된 공장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동종 업계에서 견학도 많이 온다.
"80년대 국내 기업들의 중국시장 진출이 가속화됐지만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으로 해외진출을 포기했습니다. 대신 설비 자동화와 함께 기술개발에 주력했죠."
이 같은 결과로 지역 기업들이 힘겨워했던 IMF 위기도 수월하게 넘을 수 있었고 대부분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율파고도 쉽게 헤쳐나가고 있다.
노 회장의 목표는 800원대 환율에도 영향받지 않는 탄탄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연말 또는 늦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환율변동에 영향받지 않는 회사를 만들겠습니다. 직원 1인당 매출액도 3억 원을 달성할 자신이 있습니다."
하늘을 뒤덮고 있는 먹구름 사이에서 흩뿌려지는 빗방울을 헤치며 기자를 배웅하고 공장으로 힘차게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장기간 지역 섬유산업을 뒤덮고 있는 불황과 침체의 먹구름을 걷어내려는 섬유인의 도전정신이 느껴졌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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