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법관은 더욱 외로워져야 한다

입력 2006-09-19 07:17:51

황영목 대구지방법원장은 대법관 후보에 추천될 정도로 법조계의 신망이 두텁다. 이는 재조에서 뿐만 아니라 재야 법조계에서도 공히 인정받는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그가 '일부 친·인척들에게서 만큼은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한다.'는 다소 새로운 내용을 알고 의아해 한 적이 있다. 최소한 기자가 아는 한 그의 인격에 문제있는 것은 단연코 아니어서 사정을 알아봤더니 판사가 된 이후 재판과 법원 업무에 관한 민원을 거의 들어주지 않아 그런 평가가 나왔단다.

업무 외적인 면에서는 누구 못지 않은 따스함을 지녔지만 업무에서는 한 치의 빈 틈도 보이지 않고 원칙대로 처리하는 그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고뇌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법관들은 이처럼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오해 아닌 오해를 받기 일쑤다. 판사를 형제, 친·인척, 학교 동기 등으로 둔 이들로부터 들어오는 유·무형의 눈길을 애써 피하려면 그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그렇지만 법과 원칙에 입각한 공정한 재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에 국민들은 사적인 정에 얽매이지 않는 판사를 희망하고, 그런 판사를 예우하는 것이다.

서로 '내 자식'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에게 '아이를 둘로 나눠 가지라.'는 솔로몬의 판결이 명판결로 인정받는 것은 '솔로몬'이라는 재판관에 대한 신뢰 때문일 것이다. 법관의 신뢰가 추락하면 국민들은 아무리 지혜로운 판결이라고 해도 믿지 않는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정진경 부장판사는 최근 한 법률전문지 기고에서 "솔로몬의 판결을 칭송하는 것은 그만큼 권위있는 판사와 그런 판사의 적극적인 역할에 목말라 있는 반증"이라고 분석했다.

대구 고·지법 판사들은 전관예우, 관선변호라는 단어만 나오면 상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특히 관선변호라는 용어에서는 불쾌감까지 내비친다. 이는 대구 뿐만 아니라 전국적 현상이다. 한 법관은 "판사가 되고 나서 한번도 동료 법관으로부터 청탁을 받은 적이 없는데 한, 두 사람의 잘못으로 법관 전체가 매도당하는 것 같다."고 서운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판사도 인간인데 잘못 판단할 때가 있을 수 있다. 법과 양심에 따른다고 하지만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내리는 판결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3심 제도를 만들어 오판 확률을 최대한 줄이려는 것 아닌가.

문제는 판결에 '외부의 의사가 반영된다.'고 믿는 일부 국민의 생각이다. 승소자가 있으면 반대편에는 패소한 사람이 있다. 이들은 언제나 재판의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의구심을 불식시키려면 판사는 모든 사사로움에서 벗어나야 하고 지금보다 더 외로워져야 한다. 가까운 친지나 지인들로부터 비난을 들어도 재판관으로서의 사명만을 생각해야 한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볼멘 소리가 나와도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과감히 그 길을 택하는 법관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최정암 사회1부 차장 jeong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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