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코너)노사관계 로드맵 협상 타결

입력 2006-09-19 07:32:38

노·사·정 대표들이 지난 11일 노사관계 로드맵(법·제도 선진화 방안) 협상을 전격 타결한 뒤 긍정적인 평가와 비난이 엇갈리고 있다. 그나마 노동법 개정 시한 전에 합의를 이뤄 다행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핵심 쟁점인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입법이 다시 3년간 유예됐다는 데 대해서는 실망스런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합의에 불참했던 민주노총은 이번 합의를 야합이라고 강력히 비난하면서 10월말 또는 11월 중순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노사관계 로드맵이란

합리적이고 선진적인 노사관계 구축을 위해 법과 제도를 개혁하려는 개선방안. 2003년 9월 정부가 발표한 노사관계 개혁방안에는 공무원조조 허용, 퇴직연금제 도입 등 제도개선 사항과 법·제도 선진화에 관해 새롭게 제시된 사안 등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5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의 국제경쟁력 평가에서 노사관계 경쟁력이 4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해 대외신인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로드맵 입법화는 이와 함께 국제 노동계와 국제노동기구(IL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로부터도 요구받고 있는 사안이다.

▶협상 타결에 대한 평가

노·사·정의 이번 타결과 관련, 정부의 태도는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 '노·경총의 담합에 백기 투항하듯이 굴복'함으로써 아무런 성과 없이 상황을 연기시키는 결과만 낳았다는 것이다. '9·11 합의의 치명적 약점은 유예 사실보다도 '무조건' 유예라는 점이다. 합의 과정에서 정부는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과 전임자 임금 삭감방안을 구체적으로 삽입할 것을 요구했고 한국노총과 경총은 무조건 3년 유예를 고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정부가 이를 수용해 3년의 허송세월 후 4차 유예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되어버렸다.'(신문 칼럼)

민주노총이 비타협적인 원칙을 고수했지만 정부가 협상과정에서 아예 제외시킴으로써 반쪽짜리 타협을 이뤘다는 혹평도 적잖다. 타협 과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민주노총의 책임도 있지만 정부 역시 노동계의 한 축인 민주노총을 배제했다는 사실은 문제다. '협상이란 그 결과에 못지않게 절차적 정당성도 중요한 법인데 이번 로드맵 협상은 이를 철저히 무시한 셈이다. 로드맵이 국회에서 통과되기까지에는 아직 시간이 충분한 만큼 노사정의 모든 주체들이 참여해 토론하고 대화하는 과정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신문 사설)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유예

두 가지 사안은 노동계와 사용자 모두 풀기 힘든 과제다. 협상에 참가한 한국노총으로선 노조 운영에 중요한 부분인 전임자 임금 지급을 포기하기 힘들고, 사용자는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혼란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결국 1996년 12월말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노동법 개정안에 담긴 두 가지는 노동계의 총파업에 부닥쳐 시행이 5년 유예됐고, 2001년 협상에서 다시 5년 유예돼 올해 협상 테이블에 올랐는데, 이번에 다시 3년 유예된 것이다. 유예 기간이 짧아진 사실 말고는 다를 게 없다.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노사정 대타협 선언문에서 밝히듯이, 법 시행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우려한다면 3년의 유예기간 이후에도 그 쟁점조항들의 법제화는 여전히 미뤄지게 될 것이며, 지금 과연 이러한 법 개정을 재고할 만큼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제기된다.'(신문 칼럼) '복수노조 허용 문제는 그동안 ILO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권고한 사항이어서 노동후진국의 오명을 벗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됐다.'(신문 사설) '노조 전임자는 모두 1만3천 명이고 기업이 이들에게 지급하는 연간 급여 총액은 3천 400억 원에 이른다. 회사는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을 노조 무마용으로 활용하려는 유혹을 떨쳐야 하고, 노조는 근로자의 이익을 위해 회사와 맞서면서 회사의 지원을 받으려는 구태를 버려야 한다.'(신문 칼럼)

▶그 밖의 사안들

위의 두 가지 외에 이번 협상에는 몇 가지 주요한 타결 내용이 있다.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 폐지 및 필수유지업무제 도입과 대체근로 허용, 사후의 긴급조정권 제도가 대표적이다. 또 경영상 해고 요건 완화 및 부당해고에 따른 금전보상 제도 신설 등도 노사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사안들이다.

이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노동자, 노동조합, 사용자 등 어느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으므로 유의해 읽을 필요가 있다.

'이번 합의로 우리의 노사관계 법·제도를 국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두기는 했다. 필수공익사업장 직권중재 폐지와 대체근로 허용, 부당해고에 따른 금전보상 제도 신설, 경영상 해고를 쉽게 한 것 등은 큰 진전이다. 불합리한 노사관계를 선진화하기 위한 제도적인 기틀을 마련했다.'(신문 칼럼)

'개정안은 직권중재를 폐지하는 대신 필수 공익 사업장을 항공, 혈액, 폐수처리, 증기·온수 공급업까지 확대하고, 이런 사업장에 대해서는 파업 대체 인력 투입을 허용한다. 게다가 최소 업무에 필요한 인원은 파업에 참여할 수 없다. 파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파업을 해도 대체 인력 투입으로 회사가 별 타격 없이 돌아간다면 파업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파업 참여율도 떨어질 게 뻔하다.'(신문 칼럼)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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