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혁(鄭革·51)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장은 '감자 박사'로 불린다. 생명공학을 이용해 완두콩 크기의 인공 씨감자를 개발해 얻은 별명이다.
인공 씨감자는 일반 감자보다 생존력이 10배 정도 강하고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높고, 맛도 좋다. 게다가 크기가 작아 유통과 보관에도 편리해 경쟁력이 높다.
이런 '슈퍼 씨감자'를 개발한 정 단장은 먼저 북한을 떠올렸다. 북한의 기후 조건이 감자를 재배하기에 최적이기 때문. 구황(救荒) 작물인 감자로 북한의 어려운 식량 사정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감자는 한 가지만 먹어도 영양 결핍이 생기지 않는 완벽한 식품입니다. 김일성은 옥수수에 관심을 가졌지만 김정일은 그래서 감자에 관심을 가졌지요."
1997년부터 정 단장은 대여섯 차례 북한을 방문, 오지까지 샅샅이 둘러봤다. 우선 씨감자 40만 개를 북한 나진·선봉 지역에 파종해 재배하고, 성과가 좋으면 북한 전역에 보급할 원대한 꿈을 꿨다. 하지만 순수한 학자의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았다. 북핵 문제 등 남북 관계의 변화에 따라 수시로 제동이 걸렸고, 북한의 여건도 여의치 않았다. 씨감자가 군수물자로 둔갑할 수 있다는 의심도 걸림돌이었다. "먼저 북측이 문을 열고 사심없이 받아 들여줘야 하는데 어려웠어요. 생존하려 몸부림치면서 말이죠. 이제 북한에 대한 흥미를 잃었습니다."
정 단장은 씨감자의 상업화에 눈을 돌렸다. 세계 32개국에 특허를 획득하고 교포가 운영하는 캐나다 팬 바이오택사에 기술을 이전했다. 중국에서도 상용재배가 막 시작됐다. 한국에서 개발된 인공 씨감자 기술로 캐나다와 중국이 감자혁명을 이룰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대구 토종인 정 단장이 감자 박사가 된 것은 아픈 몸 때문이었다. "고교(경북고) 때 몸이 아파 병원을 들락날락 했습니다. 집에서는 의대나 공대에 가라고 했는데 아픈 환자와 씨름하는 의사가 별 매력이 없었고, 아픈 몸으로 공장에서 일하기도 힘들 듯했습니다. 마침 심훈의 상록수에 심취해 있던 터라 서울대 농대에 입학했지요."
이런 단순한 생각에 농대에 진학하기는 했지만 농사 한 번 지어보지 않은 그이기에 무지하게 방황했다고 한다. 농대의 실정이 그의 감상적 생각과 달랐던 것. 길을 연구에서 찾아 재미를 붙였다.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박사를 하고, 한국과학기술원 생명공학연구소에서 일했다. "얼떨결에 멋모르고 선택한 진로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재미있고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장직은 2000년 공모를 통해 맡게 됐다. 3년마다 단장에 대해 재평가하는데 두 번이나 연임했다. 연구력뿐 아니라 조직 운영 능력도 탁월한 모양이다.
자생식물 이용 기술 개발은 과학기술부가 10년간 매년 130억 원씩 투입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21세기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 무려 1천여 명의 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는 허태린 경북대 교수, 심장병약을 개발하는 이종원 대구가톨릭대 교수, 화장품 소재를 개발하는 이승호 영남대 교수 등이 정 단장이 탁월하다고 추켜세우는 멤버다.
"아스피린 같은 천연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주목표입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온갖 약초가 수록돼 있는데 그 약초 속에 뭔가 좋은 물질이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그 물질은 조상의 전통을 물려받은 우리만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업단은 지금까지 기능성 식품 등 특허를 400여 건 획득했고, 논문을 500여 편 발표했다. 또 30여 건의 기술을 기업에 이전해 60억 원을 벌었고, 해외에도 기술을 이전해 250만 달러를 벌었다.
정 단장이 요즘 골몰하고 있는 일은 세계의 생물자원을 확보하는 것. 브라질 중국 동남아 아프리카 등지 4대 권역에 생물자원센터를 지어 연구원을 파견할 계획이다. 때문에 최근 아프리카를 다녀왔고, 이번 주엔 중남미 중국 말레이시아로 향한다. "생물자원 전쟁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우리나라에 식물이 4천여 종 있지만 아마존에는 10만여 종, 중국과 인도에는 각각 5만여 종이나 있지요. 그들 생물자원 부국을 지원하면서 당당하게 자원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정 단장의 꿈은 세계적 수준의 천연신약 한두 개를 개발하는 것. 정말 식물 속에서 암과 에이즈 등 난치병을 퇴치하는 물질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최재왕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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