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이런 삶] 서양화가 이수동 씨

입력 2006-09-18 08:29:11

비주류 화풍에 빠져들면서 지역 화단(畵壇)에서는 잊혀지는 듯했다. 가족과 친구들의 적극적인 후원이 없었다면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를 포기해야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들이 뛰어들기를 망설였던 이 길을 택했던 게 훗날 성공하는 화가로 급부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1990년대 초반 서울에서 첫 전시회를 가졌는데 기존의 국내 화풍과는 비교된다는 점 등으로 화단과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이후 인터넷에 소개된 것을 계기로 젊은층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대구 출신의 서양화가 이수동(李秀東·47) 씨.

젊은이들이라면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그의 작품을 한두 번은 접해봤을 정도이다. 특히 2000년 방영됐던 TV 드라마 '가을 동화'의 남자 주인공이 그린 그림이 모두 그의 작품이었는데 인터넷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요즘은 개인 홈페이지 바탕 화면으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젊은 층으로부터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그림이 부드러우면서도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시(詩)적인 면을 담고 있어 시화(詩畵)라고도 불린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대구에서 개인전을 할 때 표현주의 기법으로 인물 위주의 그림을 전시했는데 공격적이고 거칠다는 지적을 받았어요. 그후 조금씩 소프트한 쪽으로 바꾸기 시작했죠. 공격적인 그림을 그렸던 것은 당시에 처했던 현실이 무척 힘들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영남대 미대 2년 후배와 대학졸업 직후 결혼했으나, 아내가 운영하는 미술학원 한켠에서 그림을 그리며 소일하는 '셔터 맨'으로 전락(?), 학창시절 주목받았음에도 화단에서는 잊혀져 갔다. 친구들이 미술대전에서 상을 받는 것에 자극,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했으나 학비를 마련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유학의 꿈은 접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당시 지역에서 몇 차례 개인전을 가졌으나 주목받지 못했고, 다만 그의 처지를 아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어렵지만 그림은 계속 그릴 수 있게 됐다.

그러다가 90년 초반, 서울의 모 화랑 주인의 눈에 띄어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갖게 되면서 부각됐다. 이후 각종 전시회는 물론, 미술 박람회 등 대규모 미술행사에도 잇따라 출품했다.

2004년에는 아예 서울로 진출, 전업 작가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으며 아내와 두 딸도 지난 2월 뒤따라 왔다. "대구가 좁아 서울로 왔으나 이제 서울도 좁게 느껴진다."며 "외국에서 개인 전시회를 가져보는 게 꿈"이라고 한다.

서봉대기자 jiny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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