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원종원 지음/동아시아 펴냄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의 일이다.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빌 클린턴의 진영에서는 유세전이 막바지에 이르자 여론조사에서의 우세를 투표장까지 이어갈 대중적 멜로디의 선전가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이들은 '내일이면 하늘의 심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가사에 이끌려 한 곡의 노래를 선택한다. 결국 이들의 전략은 주효했고, 야당 후보였던 빌 클린턴은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그 노래가 바로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1막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내일이면'이었다.
'레 미제라블'의 음악은 이 외에도 전 세계 역사의 현장에서 앞다퉈 쓰일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중국 천안문사건 때 학생 시위대는 '레 미제라블'의 주제가 격인 '사람들의 (혁명의)노래가 들리는가?'를 목청 높여 불렀고, 걸프전 때에는 미 국방성의 공식 요청으로 군대 파병에 관한 홍보 영상물의 음악에 혁명의 바리케이드에서 부르는 장발장의 노래 '이들을 집으로 돌아가게 하소서'가 쓰였다.
1985년 런던 초연 이래 최장기 공연작으로 꼽히고 있는 '레 미제라블'은 지금도 런던의 중심가인 레스터 스퀘어의 퀸스 극장에서 프랑스의 3색기를 나부끼며 오픈 런을 이어가고 있다.
뮤지컬 캐츠의 대표곡 '메모리'는 150여 명에 이르는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을 만큼 세계적 애창곡으로 널리 사랑을 받고 있고, '오페라의 유령'은 세계 20개국 110여 개 도시에서 번안, 공연되기도 했다.
뮤지컬 열풍은 비단 세계적 명소인 영국 웨스트 엔드와 미국 브로드웨이에 국한되는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세계 각국에서 이뤄지는 투어공연과 해외여행, 문화를 향유하는 계층의 확산으로 뮤지컬은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가장 사랑받는 문화 장르'로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2005년 전체 공연계 매출의 60% 차지', '2001년 이후 매년 20% 이상 성장' 등 국내 뮤지컬 산업의 성장은 놀라운 정도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내에서 뮤지컬을 마음껏 향유하기에는 아직은 그 토대가 미약한 것이 현실이다. 역사와 이론에 치우친 관련 서적들은 막연한 상상력을 보태야했고, 제한된 공연정보는 작품의 맛뵈기 감상을 전해주는 데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현대 뮤지컬을 대표하는 48작품을 다각도로 조명한 책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은 이런 뮤지컬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준다.
순천향대 교수로 재직중인 저자는 뮤지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쉽고 명쾌하게 작품에 접근, 뮤지컬 관련 기사나 칼럼에서 자주 이름을 마주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뮤지컬 칼럼니스트이자 평론가다.
대학재학 중이던 80년대 말 런던에서 본 뮤지컬의 감동에 이끌려 국내에 뮤지컬 인구가 미미했던 당시 온라인상에 뮤지컬 동호회를 만들 정도로 뮤지컬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왔던 그다.
이 방대한 기록은 그가 오랜 시간에 걸쳐 직접 발로 뛰며 얻어낸 뮤지컬 보고(寶庫)서다.
책에는 '오페라의 유령', '캐츠',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등 소위 뮤지컬 '빅4'라 불리는 초대형 흥행작은 물론 소극장을 중심으로 공연된 작품이나 실험작들까지 아우르고 있다.
'흥행의 보증수표'로 불리는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를 비롯해 영미권 극장가를 쥐락펴락하는 주역들의 면면을 분석하기도 하고 '로키 호러 쇼'나 '리틀 숍 오브 호러스'로 대표되는 엽기·컬트 뮤지컬, 아바나 귄, 빌리 조엘 등 인기 있는 뮤지션들의 음악으로 꾸민 팝 뮤지컬, 디즈니 사와 손잡은 '라이온 킹', '아이다', '미녀와 야수' 등의 작품들, 고전 작품을 무대화한 '노트르담 드 파리' 등의 작품들을 총망라해 소개한다.
무엇보다 거의 모든 작품을 현지에서 직접 접하면서 제작 관계자들과의 인터뷰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낸 이야기들은 작품 자체의 줄거리와 주제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제작과 캐스팅에 얽힌 일화, 문화산업의 측면에서 바라본 의미까지도 설명하면서 작품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 뮤지컬인 '미스터리스', 미스터리 서스펜스물인 '우먼 인 화이트', TV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를 응용한 성인 인형 뮤지컬 '애비뉴 Q' 등 이제껏 지면에서 제대로 소개된 적 없는 최신작까지 다루고 있는 점은 보너스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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