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學(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 지는 오래다. 이 말은 대학에서 비롯됐지만, 이 위기에 신경 쓰는 사람들 역시 인문학자들뿐이라는 개탄이 나올 만큼 인문학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文'史'哲(문'사'철-문학'사학'철학) 등 인간의 내면과 사회적 관계의 본질적 영역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학문들이 의학'법학 등 실용적인 학문에 밀려 갈수록 설자리가 좁아지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지금 거론되는 이 위기는 내부보다는 외부에 있다고 봐야할 듯하다. 인문학 강좌들이 수강생 부족으로 속속 폐강되고, 이를 전공한 학생들은 졸업한 뒤 취업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인문학은 돈이 안 되는 학문'이므로 기피할 수밖에 없다는 학생들의 말을 흘려들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학 내에서조차 實用(실용)과 效率(효율), 근시안적인 성과만 좇는 '시장 논리'로 간다면 나라 장래가 걱정된다.
◇고려대 문과대 교수 117명이 어제 문과대 설립 60주년을 맞아 '인문학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인문학은 시대를 초월해 가꾸어야 할 소중한 문화 資産(자산)이지만, 무차별적 시장 논리와 효율성에 대한 맹신이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그 존립 근거와 토대마저 위협받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 활동과 교육 행위마저 계량적 평가 대상과 상업적 생산물로 변질되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집단적으로 이런 선언문을 발표하기는 처음이며, 인문학계 전체로 확산될 조짐이어서 그 위기를 실감케 한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한양대'이화여대 등 전국 80여 개 대학 인문대 학장들이 오는 26일 이화여대에서 공동으로 인문학 지원 촉구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며, '인문대학장협의회' 결성 움직임이어서 파장도 예상된다.
◇가벼운 思考(사고), 돈벌이에만 시간을 쏟는 사고는 결국 인간을 소비적'단선적'일회적으로 이해하는 오류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인문학은 학문에 있어서는 물론 사회의 기초적인 토대를 만들어주며, 메마른 사회를 인간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그 본질과 사회 변화 흐름의 바탕 위에서 해법을 찾아야겠지만, 知識生態系(지식생태계)의 파괴는 반드시 막아야 하리라.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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