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농촌체험] (21)성주 중기녹색마을

입력 2006-09-14 07:49:16

"9일 성주지역의 강우 확률은 오전 60%, 오후 40%입니다." 비를 예고하는 일기예보가 가슴을 무겁게 한다. '가을비는 장인 구레나룻 밑에서도 피한다.'는 속담처럼 가을에 내리는 비는 양이 적다. 하지만 풍년을 기다리고 있는 들판에도, 추억을 찾으러 떠나는 나그네에게도 가을비는 달갑지않다.

다행이다.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가야산 위에 걸린 구름은 애써 울음을 참고 있다. 도시에서 찾아온 손님 마중을 나온 최상곤(41) 이장과 장인석(44) 사무장의 얼굴에도 안도(安堵)의 빛이 가득하다.

"자, 이제 가재를 잡으러 갑시다." 환영인사를 마친 최 이장이 체험단을 계곡으로 안내한다. 모두들 잔뜩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가재란 녀석들은 어디에 꼭꼭 숨었는 지 모습을 드러내지않는다. 아무리 깨끗한 가야산이라 해도 가재가 모두 사라진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그 순간 계곡 위쪽에서 함성이 터진다. "잡았어요. 꽤 큰 놈이에요." 한 마리만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김형준(11)이도 윤종현(9)이도 곽태호(9)도 연달아 환호를 올리지만 김위나(7)는 못잡은 것도 억울한데 만져보다 물리는 통에 대성통곡을 터뜨린다.

잡은 가재를 놓아주고 고구마밭으로 향하는 걸음들이 가볍다. 살아있는 자연에 벌써 익숙해진 것일까. 처음 해보는 호미질도 꽤나 재바르다.

고구마를 수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추석 즈음은 돼야 한다. 그렇지만 이따끔 큰 놈도 호미 끝에 걸려 웃음꽃을 피게 한다. 구현주(36·여) 씨는 솜씨 좋게 고구마순을 훑어내고 곽동일(44) 씨는 흙만 털어낸 채 덥석 한 입 베어문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동심으로 돌아간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 모두 마을 정보화센터 앞으로 모여든다. 장작불은 활활 타오르고 어디선가 나타난 반딧불이들은 이 곳이 청정산골임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김민구 농협 구미교육원 교수의 유머스러운 게임과 먹기좋게 익은 군고구마, 동동주 한 잔은 모두를 하나로 이어준다. 산골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다음날 아침, 장닭 홰치는 소리에 선잠을 깨고 산들바람에 이끌려 표고버섯농장으로 향한다. 어른 키 높이로 잘라 세워 둔 참나무에 버섯이 빼곡이 피어있다.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신기한 듯 만져보고 어른들은 크고 모양 좋은 놈 고르기에 바쁘다. 대도시 백화점이나 대형 소매점보다 훨씬 싼 값에 모두 지갑을 열기에 바쁘고 농부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중기마을에는 남다른 자랑거리가 두 가지 있다. 먼저 2억 원을 들여 만들었다는 황토볼(ball) 길이다. 마을을 지나는 국도와 마을을 잇는 이 길은 도시민들이 많이 찾아달라는 뜻도 담고 있다. "건강하지않으면 많이 아플 것"이라는 장인석 사무장의 엄포에 모두들 아파도 안 아픈 척 끝까지 걷는다. "참 좋습니다. 발바닥이 화끈거리는 게 병이 다 나은 모양입니다. 하하하"

마을의 두번째 자랑거리는 통일신라시대 유적인 법수사지 당간지주와 3층 석탑이다. 김세기 대구한의대 교수의 자세한 설명에 모두들 귀를 쫑긋 세운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열린 교실'에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

맛있는 닭죽으로 점심을 해결한 뒤 찾은 가야산 야생화생태식물원. 몇달 전 문을 연 이 곳에는 400종이 넘는 우리 식물이 자태를 뽐낸다. 할머니의 슬픈 삶을 담고 있는 '할미꽃의 전설'은 다시 한 번 부모님을 생각하게 하고 '노루오줌', '중대가리나무'는 실소를 자아낸다.

대구로 돌아오는 길. 선물로 받아든 한방채소와 참외 한 상자씩에 모두들 즐겁다. 하지만 가슴 속에는 이미 더 큰 수확이 있다. "엄마, 우리 다음에 또 와요. 농촌이 이렇게 신나는 곳인 줄 몰랐어요." "그래, 다음에는 아빠도 같이 오자꾸나."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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