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조순형은 밤낮 책상머리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가 "좀 나가 놀아라!"고 하면 "숙제를 해야죠"하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키가 컸던 그는 학교에서도 뒷자리에 앉아 말없이 공부만 했다. 또한 바로 윗형인 윤형(전 국회 부의장)의 영향을 받아 책 읽기를 즐겼다. 거기다 도무지 말썽이라고는 몰랐다…. 남편은 황소고집이다. 여태 살면서 한 번도 남편을 이겨본 적이 없다. 다행히 본인 자신이 곧은 길을 가니까 별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다른 남편들을 보면 섭섭할 때가 있다.(김금지 에세이-남편 이야기)
○…조순형은 지금도 국회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국회의원이다. 어릴 때 공부 버릇 그대로다. 점심만 먹으면 곧장 국회도서관으로 향한다고 한다. 사무실에 있으면 찾아오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전화 때문에 공부에 集中(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도서관 직원들이 퇴근을 못할 정도로 자료를 뒤지고 책에 파묻혀 지낸다.
○…조순형의 프로필은 1980년대 이후 한국 정치의 격랑마다 굵은 선을 그었다. 87년 軍政(군정) 종식을 위한 YS와 DJ의 대선 후보 단일화 주도와 실패, 90년 3당 합당 반대, 2004년 노 대통령 탄핵 주도가 대표적이다. 그때마다 다수 政派(정파)에서 떨어져 나와 '나 홀로 길'을 택했다. 2004년 총선 때는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워 서울 지역구를 버리고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3등 낙선했다. 무모한 출마였지만, 부친 조병옥을 당선(3대 총선)시켰던 대구에 한 가닥 기대가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쌓인 내공과 뚝심이 이번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인사청문회에서 진가를 드러냈다. 모두가 놓친 '헌법재판소의 장은 재판관 중에서 임명한다'는 이 너무도 명백하고 단순한 헌법 조항이 그냥 조 의원의 눈에 잡힌 게 아닌 것이다. 그런 조 의원이기에 "젊은 국회의원들이 공부를 안 한다" "국회의원은 365일 깨어 있어야 한다"고 일갈해도 누구 하나 찍소리 못하고 있다. 하기야 '변호사 정당'인 한나라당조차 71세 6선 의원 하나만도 못하니 누가 낯을 들 것인가.
○…물론 그에 대해 다른 평가도 없지 않다. 섬처럼 혼자 지내며 집밖에 모르고, 원칙에는 타협이 없으니 같이 지내기가 불편하다는 얘기다. 한국적 정치풍토를 벗어나 또 다른 정치문화에서 보면 같잖은 비판이다. 요즘 같으면 그이 혼자 정치의 중심을 잡는다 해도 지나칠 게 없겠다.
김성규 논설의원 woosa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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