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생님은 농사꾼"…생태원 꾸미는 장기초교 교사들

입력 2006-09-12 07:34:32

학교에서 식물원, 화단 등 생태원(生態園)을 가꾸는 일은 여간 수고스럽지 않다. 단순히 학교를 꾸미기 위한 게 아니라 학생들의 자연학습장 정도로 꾸미기 위해서는 사시사철 꽤 많은 손이 많이 간다. 파종에서부터 순따기, 수분, 물주기, 흙갈이, 비료·농약주기까지 어지간한 원예농사에 버금간다. 그래서 생태원 관리는 학교 보수 담당자나 행정실 몫으로 돌아가기 십상이다.

이런 가운데 교사들이 직접 나서 아름다운 생태원을 꾸미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지난 8일 오후 달서구 장기초교를 방문했다. 아파트 단지와 아스팔트로 포위된 것처럼 보였던 학교는 교정을 들어서자 아기자기하게 녹지를 꾸민 자연학교로 바뀌었다. 건물 입구부터 다알리아, 국화 등의 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농촌에서도 보기 힘들다는 아주까리나 수수대가 담장 안쪽에서 크게 자라고 있었다.

"2년 전 이 학교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전형적인 도시 학교였습니다. 아이들에게 푸른 학교를 만들어주자는 생각에 한동안 정신없이 바빴죠."

한은환(50)·배재근(51) 교사는 부임 첫 해부터 직접 팔을 걷어부치고 흙을 퍼다 나르고 나무와 화초를 심었다. 신설학교(2000년 개교)인 이곳은 아파트 단지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생태원 조성 필요성이 더 절실했다.

한 교사는 "학교에 꽃과 나무가 많아지면 학생들의 정서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며 "배 교사 같은 훌륭한 일꾼이 계셔서 이런 일이 가능했다."고 활짝 웃었다. 그는 직전 부임지인 경운초교를 비롯해 지난 10년간 다니는 학교마다 생태원 작업에 매달렸다. 요즘은 아름다운 화초와 나무를 카메라에 담는 일이 취미가 됐다.

배 교사는 국화 전문가. 거의 모든 종류의 국화에 환한 그는 "정기적으로 원예잡지도 구독하면서 정보를 얻고 있다."고 했다.

장기초교에서 눈에 띄는 곳은 3층 옥상에 꾸며진 '조롱박 쉼터'. 수세미, 조롱박, 연, 부들, 수련, 창포 등 덩쿨식물과 수생식물이 빽빽하게 조성돼 있다. 두 사람은 지난 여름방학 꼬박 학교에 출근해야 했다. 식물들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하루라도 물을 거르면 바싹 말라버리기 일쑤니까요."

곤충이 거의 날아들지 않는 곳이다 보니 수분(受粉)작업도 일일이 손으로 해야 했다. 직접 농약통을 짊어지고 진딧물이나 병충해 약을 뿌렸다. 관개시설이 되지 않았을 때는 호스를 들고 돌아가며 물을 줘야 했다.

그 중 가장 고된 일은 계절에 따라 덩쿨식물을 관리하는 것. 추위가 오고 덩쿨이 바싹 마르기 시작하면 덩쿨이 칭칭 감긴 노끈을 다 걷어내고 날씨가 풀리면 다시 하우스 모양으로 노끈을 설치했다. 거의 일주일이 꼬박 걸리는 일이다.

이렇게 조성된 생태원은 학생들에게 좋은 자연 학습장이 되고 있다. 지난해는 이곳에서 재배된 조롱박을 모든 6학년생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1인 1화분 가꾸기, 식물이름 탐구대회, 재배부 특활활동을 하고 있다.

"저희가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삭막한 콘크리트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풀냄새 나는 학교를 꾸밀 수 있습니다."

최병고기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