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아니라니…" 한 외국인 노동자의 죽음

입력 2006-09-11 09:04:41

8일 오후 대구적십자병원 영안실.

필리핀 이주노동자 엘리사벳(45) 씨는 울다 지쳐 있었다. 2년 6개월 전부터 경북 군위 한 섬유공장에서 함께 일해 왔던 남편 레날도(47) 씨가 7일 숨졌기 때문.

남편은 지난 달 22일 오전 6시쯤 공장 기숙사에서 물을 마시다 갑자기 쓰러졌고, 탁자에 머리를 부딪쳐 혼수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끝내 숨을 거뒀다.

불행은 겹으로 찾아왔다. 근로자복지공단은 일과 상관없이 외상으로 숨진 남편은 산재처리가 힘들다고 밝혀 온 것.

부부를 돌봐 온 대구외국인노동상담소 김경태 목사는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 운없게 탁자에 부딪혀 죽음을 맞을 수 있겠냐."며 "과로로 인한 빈혈 증상이 사망에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한데, 왜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 했다.

당장 장례비가 모자라 분향소도 차리지 못하고, 남편 시신을 차가운 영안실 냉동고에 놓아 둘 수밖에 없었던 엘리사벳씨.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면 남편 입원비 2천만 원을 고스란이 떠안아야 하지만 피땀 흘려 번 돈으로 필리핀에 두고 온 가족과 딸 생계를 책임져 왔던 부부에게 여윳돈이 있을리 없다.

"딸에게 어떻게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알려야 할 지 두렵기만 한데, 남편을 잃은 것도 모자라 이젠 빚더미에 앉아야 한다면 남편을 따라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예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던 엘리사벳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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