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청담동 (주)사바비안 사무실에서 이주영(李珠榮·77) 회장을 만난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너무도 젊게 보여서다. 얼굴에 주름이 거의 없고 피부는 20대 처녀처럼 맑디 맑다. 화장을 전혀 하지 않고 립스틱만 살짝 발랐을 뿐이다. 백발인 머릿카락은 연보라 수국(水菊) 색깔로 살짝 물들여 멋스럽다.
수국은 사바비안의 사화(社花). 다른 꽃은 비가 오면 상하나 수국은 비를 좋아한다. 사람의 피부가 그렇다. '70대 홍안소녀'가 운영하는 회사의 꽃으로 제격이다.
수국의 꽃잎 같은 피부를 가진 비결이 뭘까? 바로 화장을 하지 않는 것. "아름다운 피부는 화장품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화학물질이 함유된 화장품은 피부를 되레 상하게 합니다. 식생활을 정확하게 하고, 잘 자고, 적당히 운동해 건강하면 피부가 저절로 아름다워지죠." 또 있다. '사랑'이 가장 좋은 화장품이라 한다.
화장품 회사 회장이 화장을 하지 말라고 하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러나 사바비안 화장품은 인체 세포의 고유한 물질로 만들고, 오일 성분과 방부제와 알레르기원을 모두 배제한 제품이란 설명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바비안은 화장으로 망가진 피부를 화장하기 전 맑은 피부로 되돌리는 작용을 한다. "6개월간 사바비안을 바르고 피부관리사의 말을 들으면 누구나 화장하기 이전의 피부로 돌아갑니다. 1년 이상 사바비안을 바른 여성을 대상으로 피부미인대회를 열고 있어요." 대단한 자신감이다.
이 회장은 지난 1995년 66세의 나이에 미용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자마자 일본에서 사바비안화장품을 창립했다. 피부과 전문의로 아토피피부염 치료에 능한 큰아들과 공동 연구한 화장품이다. "아토피란 '희귀하다' '이상하다'는 뜻의 그리스어입니다. 혈액순환이 잘되면 피부가 아름다워진다는 데 착안했어요."
결과는 대성공. 선풍적 인기를 끌며 일본 전역에 100여 개의 대리점이 생겼다. 주변에서 한국 진출을 권해 3년여 전 서울에 회사를 차렸다. 광고를 전혀 하지 않고 방문판매로 일관했지만 1년 반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지금은 전국 지사 10개, 대리점 60여 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그가 한국 진출에 앞서 출간한 '알면 미인이 된다'(문예당)는 저서는 스테디셀러다. 이 책을 읽은 영감님이 러브레터를 보내오고, 일본에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이 회장은 친구들에게 "너희들은 칠십 넘어 프러포즈를 받아 봤느냐?"고 뻐긴다.
청도 각남이 고향인 이 회장은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삼덕초교 교사로 일하다가 남편과 함께 도일(渡日)했다. 남편 정재석 씨는 한인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서른일곱의 꽃다운 나이인 이 회장과 네 아들을 두고 저세상으로 갔다. 막내가 네 살. 이국만리에서 인종 차별을 받아가며 혼자 네 아들을 키운 그 고통과 설움을 어찌 말로 다 할까.
고맙게도 아들은 모두 잘 자라줬다. 첫째와 넷째가 서울대 의대, 셋째가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모두 피부과 의사가 됐다. 피부 박사인 어머니의 영향일 게다. 특히 첫째가 운영하는 동경의 정피부과가 큰 인기를 끄는 등 피부과 전문의 삼형제가 일본에서 유명하다. 둘째는 가슴에 묻었다. 신은 누구에게나 아픔 하나 정도는 주는 법일까.
이 회장은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우선 멋진 남자를 만나 뜨거운 사랑을 해보고 싶다. 하지만 그의 수준에 맞는 남자를 만나기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최고의 미용대학교도 만들고 싶다. 피부관리사가 교수를 하는 그런 수준의 대학이 아니라 제대로 된 피부미용 교육을 받은 교수가 강의하는 대학이다.
일본에 대한 책도 쓰고 싶다. "일본이 있다 없다 하는데 웃겨요. 60년간 지켜본 저도 왜놈 속을 모릅니다. 지독한 놈들이요. 외국인에게 의무만 강요하고 권리는 주지 않는 세계 유일의 나라이지요. 그놈들이 어떻게 했는지 하나하나 기록할 겁니다." 일본에서 사업하는데 그렇게 심하게 말해도 되느냐고 묻자 "상관없다."고 했다.
이 회장은 만년에는 고향에서 살려 한다. 최근에 청도 유천에 땅을 사 자그마한 집을 짓고, 과수원을 만들었다. 회사는 조카에게 물려주려 한다. 몇년 후 유천에 가면 일본 경험담을 쓰고 있는 이 회장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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