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더위의 끝자락이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 포구에 섰다. 옹기종기 매달려 있는 작은 고깃배들이 친구처럼 정겹다. 폼 잡지 않고 바다와 어울리는 수줍음 같은 것이 느껴진다. 파도를 타고 놀며 수없이 재잘거린다. 나도 몰래 입가에 미소가 번지려는 찰나 저 뒤로 커다란 유조선 하나가 천천히 지나간다. 고개를 치켜들고 고깃배들을 비웃으며 작은 파도는 물론 바다 전체를 제압하려는 듯 으스댄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잉카의 마추피추, 중국의 만리장성, 미국의 무역센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큰 것에 대한 집착은 다름이 없다. 큰 것은 상대적인 강함을 의미하고 지배력과 지배자의 권위를 상징한다. 지배의 매력은 상대의 의사와 전혀 관계없이 나의 의지를 모두 관철시킬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역사가 진행되면서 큰 것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이 되어가는 이유다. 커다란 피라미드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위해 수없이 많은 작은 사람들의 땀과 생명이 바쳐지고 시간을 넘어 권력의 상징으로 존재한다. 당시에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작은 개인들의 원한과 분노가 후세의 말과 글에서 그리고 의식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원한과 분노가 다 풀어질 때까지 계속된다.
세계 유일의 대국 미국의 위세와 현실적 지배의 양상은 반세기에 걸쳐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난 터이다. 이제는 중국이 명실상부한 대국을 원한다. 티베트 학살과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과 문화적 동화정책을 지나 동북공정이라는 역사날조 행위에까지 고도화된 기술을 선보인다. 큰 것, 힘, 지배에 대한 동경과 집착은 이미 사회적 집단 광기의 수준에 이른 느낌이다. 유조선은 작은 고깃배를 자신이 만드는 파도만으로도 전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 그것은 상대의 무조건적 굴복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적 힘에 바탕한 것이므로 당장은 쉽게 성취될 수 있다. 엄청난 속도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는 대나무가 있다. 그러나 속이 비어 있으므로 단 한 번의 충격에 전체가 둘로 쪼개어진다. 진심과 진정성으로 채워지지 않은 대국은 대(竹)국일 뿐이다. 공자, 맹자의 나라에 권한다. 우후죽순의 대밭이 되지 말고 모든 나무가 마음대로 자란, 태산 같은 대국이 되시라. 그럼 애써 말려도 모두가 그 앞에 기쁜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릴 것이니.
황보 진호
하늘북커뮤니케이션즈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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