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그 해 가을에는

입력 2006-09-09 07:13:43

결혼 할 나이가 가까워지던 어느 가을 야유회에서 나는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의지할 곳 없는 고아였기에 자라 콧구멍만큼의 재산도 없이 달랑 알몸 하나로 세상과 힘을 겨루어야 하는 처지였다. 나는 그래도 젊음만이 인생 최고의 재산이라 여기며 사랑에 빠졌고 집안에서는 반대가 대단했다.

나는 뜻을 관철시키고자 가출을 했고 소위 말하는 살림을 차렸다. 살림이래야 쪽방에다 수저 두 벌, 냄비 두 개, 어느 집에서 얻은 안 쓰는 요 한 개에 모포 한 장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뜻은 완강하여 급기야 나에게 집으로의 출입금지령이 내려졌다. 친정은 높은 장벽 저쪽에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두 고아가 되어 밥은 거의 하루에 한 끼 정도 먹고 나머지는 대체식품으로 때우며 옷은 대개가 얻어 입으면서 저축을 했다.

우리 아이가 일곱 살이 될 무렵 작으나마 전세방 얻을 돈을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 친정으로부터 기별이 왔다. 한번 다녀가라는 전갈이었고 부모님이 뜻을 꺽으셨다며 결혼식을 올리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자식 낳은 부모 죄라 모르게 수소문하여 우리가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한 더위가 가시고 적당한 날을 잡아 가족 친지만 모인 자리에서 그렇게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고 혼수비 대신으로 현금을 마련해 주셔서 우리가 모았던 전세금과 합하여 14평 짜리 아파트를 사게 되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내 집이 생긴 것이다. 가을이 깊어갈 때 우리는 새집으로 이사를 했고 빨간 고추잠자리도 함께 이사 보따리를 따라왔다. 부모님께서도 열심히 사는 우리들의 모습에 마음을 여셨다며 기꺼이 집들이에 참석해주셨다. 그 해 가을은 세상 어느 가을보다 더 높고 더 푸른 가을 하늘이었다. 좋아서 좋아서 아무리 뛰어도 힘껏 뛰어올라도 더 높은 하늘에 내 머리는 닿지 않았고 더 푸른 물빛만 흐르고 있었다.

지금 우리 아이를 결혼 시켜야 할 나이가 되었다. 올 가을이면 어떨까? 올해도 가을 하늘이 더 더욱 높고 푸르렀으면 좋겠다.

김근수(대구시 북구 산격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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