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탈(脫)관료주의 정부혁신의 과제

입력 2006-09-07 08:29:26

20세기 말 이래 지난 사반세기 가까운 기간에 서구의 선진국들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 온 정부혁신의 기본 방향은 국정운영에서 관료주의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우선, 정부 업무라고 해서 반드시 정부가 관료제 조직을 통해 집행까지 직접 수행하던 방식을 지양하고 대신에 기업이나 비영리기구(NPO) 등의 민간 조직을 활용하여 집행을 대행시키는 방식을 강구해 왔다. 이른바 '민관협력', '아웃소싱(out-sourcing)', '외부계약' 등의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장경쟁 원리가 적용 되도록 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행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방안이다.

부득이 정부가 직접 집행까지도 수행해야하는 경우에도 가능한 정책결정 업무와 정책집행 업무를 분리하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중앙행정기관보다는 지방행정기관에서 하도록 하거나, 아예 집행 업무만 전담하는 이른바 '책임운영기관(agency)'화하는 방식을 강구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분권과 자율의 신장이며, 이를 통해 조직의 창의성과 신축성을 극대화하려는 방안이다.

이처럼 정부가 집행 업무를 가능한 지방행정조직이나 책임운영기관 그리고 민간조직 등에 의해 경쟁과 자율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하되, 사후에 그 성과를 평가하여 책임성을 확보하는 방식이 병행된다. 이처럼 절차보다는 성과를 더 중시하는 사고방식은 사전에 세세하게 절차를 정해놓고 그에 따라 행정이 수행되는지 여부를 집행과정에서 줄곧 감독하는 종래의 관료주의 행정 방식과는 사뭇 차이가 있는 것이다.

본래 관료주의는 서구에서 근대화와 더불어 발전이 이루어진 행정 패러다임이다. 근대화 이전에 군주를 비롯한 지배자 개인의 사적 이해관계에 의해 행정이 좌우되던 것을 방지하고, 행정이 국민의 보편적 이익을 위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행정이 내용적으로 합리적일 것과 절차적으로 법에 근거할 것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관료제 행정의 제도화를 통해 서구 나라들은 국가간에 발생한 전쟁에서 국내 경제정책과 사회복지에 이르기까지 20세기에 발생한 크고 작은 현안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말에 이르러 이처럼 한 세기 이상을 제도화하고 활용했던 관료제 방식을 탈피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 정보화 그리고 탈근대주의의 시대에 관료제 패러다임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동안 이와 같은 탈관료주의 국정운영 방식을 적용해 본 결과 문제점이 나타난 것 또한 사실이다. 이라크 전쟁 과정에서 있었던 가공할 인권유린 사건들이 대부분 '아웃소싱' 방식에 의해 임용된 미군 병사들에 의해 무책임하게 저질러진 것이라는 소문을 한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예는 절차보다 성과를 더 강조하는 행정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관료주의가 채 완전히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 있는 많은 비(非)서구 국가들의 경우에는 성과주의 행정의 구현을 어렵게 만드는 행정문화적 장애 요인까지 존재한다. 성과관리가 성공적으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사후 평가와 그에 따른 객관적인 상벌체계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행정에서 온정주의가 성행하는 상태에서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전근대적인 행정문화가 아직 남아 있는 상황에서 근대적 행정 시스템인 관료제를 넘어 후기근대주의(post-modernism)의 성과주의 행정 시스템을 도입해야하는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앞서 추진해 나가고 있는 새로운 행정 패러다임을 남의 일처럼 바라보고만 있다가는, 마치 전세기에 근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랬던 것처럼, 비서구 국가들의 발전 속도는 그만큼 또 늦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서구 국가들로서는 혼재하고 있는 전근대와 근대 그리고 후기 근대주의의 다양한 사고방식과 행정제도들간의 상호 정합성을 고려하여 접목을 꾀하고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서구 나라들이 거친 발전의 단계를 단축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정용덕(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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