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와니와 준하

입력 2006-09-07 07:52:09

오랜만에 높고 푸른 하늘을 응시하노라면 갑자기 콧등이 시큰하고, 선선한 바람이 살갗에 닿으면 왠지 서글퍼진다. 이 세상에 나 혼자라는 외로움도 엄습한다. 가을은 시각, 촉각, 청각 등 오감을 통해 우리의 감정의 뇌에 저장되어 있던 고통스런 기억들을 자극하여 우울증을 유발하는 계절이다.

'와니와 준하'의 주인공 와니(김희선 분)는 왠지 의욕이 없고, 처져있고 말이 없다. 주어진 일 외에는 어떤 관심도 없는 그녀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준하와 함께 있지만, 그에게조차 마음을 열지 못한다. 기분부전증(dysthymia)이라는 우울증상을 보이는 와니. 그녀는 왜 이토록 우울한 것일까. 와니의 마음 속엔 지울 수 없었던 아픈 기억이 잠복하고 있었다. 첫사랑이었던 이복동생과의 사랑과 이별은 그녀에게 어떤 노력으로도 넘어설 수 없는 무력감을 안겨주었고, 이것은 그녀를 만성 우울증 환자로 만들었다.

25세의 C양은 몇 년전부터 사람들과 있는 것이 불편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유없이 눈물이 흐르고, 감기 몸살처럼 온몸이 아프고 열이 나는 것 같고, 소화가 되지 않고 살이 점점 빠진다면서 병원을 찾았다. 부모님에 대한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다는 C양은 어렸을 때부터 가족보다는 친구에게 더 의지해왔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의존심은 좌절감과 분노심으로 이그러지고, 상처받은 마음은 신체증상을 만들어내는 장기간의 악순환이 거듭되었다. 감정부전장애라는 만성 우울증 탓이었다.

만성 우울증은 부정적인 생각이나 자기파괴적인 행동 습관과 연관이 있다. 부정적인 감정과 맞물려 학습된 무기력감은 뇌의 사고 능력을 생물학적으로 방해한다. 아무리 긍정적인 자극이 오더라고 갇혀버린 뇌기능은 부정적인 반응만 되풀이할 뿐이다. 뇌가 융통성있는 사고 능력을 회복할 때까지 정신의학적인 치료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성미 마음과마음 정신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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