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뇌위축증 걸린 남편 돌보는 손순자 씨

입력 2006-09-06 08:51:59

손순자(46·여·달서구 본동) 씨의 눈에 비친 풍경은 흐릿하다. 아무리 눈을 비벼 봐도 마찬가지. 구름 낀 날씨 탓이 아니다. 사시(斜視)로 인해 시력이 떨어져 신문에 적힌 글자보기도 쉽잖다. 머리도 아프다. 하지만 남편 전상기(56) 씨의 병원비를 대려면 150만 원이나 드는 사시수술은 먼 훗날의 이야기일 뿐. 남편 생각만 하면 고이는 눈물 탓에 손 씨의 눈앞은 더욱 흐리다.

전 씨는 7년 전부터 소뇌위축증을 앓고 있다. 이 병은 인구 100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질환으로 아직 마땅한 치료방법이 없다. 운동능력 상실, 근육마비에 시력·청력 상실로 이어지다 죽음을 맞게 되는 병인데 모계 유전에 의한 것이라는 연구결과만 나와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택시 운전을 했던 전 씨는 발병 이후 운전대를 놓아야 했다.

자주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던 남편. 하지만 그리 심각한 병을 앓고 있으리라곤 미처 생각지 못한 손 씨였다. "처음엔 빈혈인줄로만 알았죠. 음식을 잘 챙겨주고 푹 쉬게 되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밥숟가락을 제대로 못 들지 뭡니까. 몇 달 뒤엔 걸음을 걷지 못하게 됐고요. 병의 진행속도만 늦출 수 있을 뿐이라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요."

생계유지는 손 씨의 몫이 됐다. 많이 배우지도, 가진 것도 없는 처지인지라 할 수 있는 일은 몸으로 부딪히는 일 뿐. 아파트 계단을 청소해 매달 손에 쥐는 돈은 48만 원. 남편 병원비도 내야 했기에 살림은 궁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에게만은 짐을 지워주고 싶지 않았지만 딸(22)과 아들(21)은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지난해 중순 전 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 소뇌위축증의 진행속도는 늦췄지만 당뇨 증세가 문제였다. 다행히 의식은 회복했지만 사지 마비는 물론, 말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고교 졸업 후 아이들은 제각각 일거리를 찾았다. 한 푼, 두 푼 집에 보탰지만 삶의 무게는 쉽게 가벼워지지 않았다.

"눈만 끔벅일 뿐, 꼼짝도 못해요. 혼자 숨을 쉬지 못해 목을 뚫어 튜브를 꽂은 뒤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는 형편이에요. 이따금 제가 남편 귀에 대고 '견딜 만 하냐, 나는 괜찮다'며 말을 걸면 남편 눈엔 눈물이 고입니다. 본인은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울까요."

아들은 지난해 9월 군에 입대했다. 일을 쉴 수 없는 처지인데다 남편 병수발까지 해야 하는 터라 아들의 신병훈련소 퇴소식 때도 가보지 못했다. 다들 가족이 오는데 혼자 퇴소식을 맞았을 아들을 생각하면 손 씨의 가슴 속은 또 한번 멍이 든다. 딸은 올해 전문대에 진학했다. 스스로 학비도 대고 생활비도 보태야 하지만 보다 나은 직장을 잡아야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올해 초 손 씨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차에 치였다.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오른쪽 어깨를 다쳐 팔을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웠다. 합의금조로 받은 돈은 60만 원. 한 번에 3천500원이 드는 간단한 물리치료만 서너 차례 받고 남은 돈은 남편 병원비로 썼다. 지난해 5월 이후 한번도 내지 못한 병원비가 날이 갈수록 쌓여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하루 9시간 청소를 하고 나면 손 씨의 발길은 남편 곁으로 향한다.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병수발을 들다 밤이 깊어져서야 집으로 돌아간다.

"내후년쯤부턴 아이들이 제 짐을 덜어주겠죠. 못난 부모 만나 아이들이 고생이네요. 하지만 그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 몸 돌보지 않고 일을 해왔건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으니 하루하루가 너무 기네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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